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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미리 써 본 나의 부고

모든 글은 재미있고 의미가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도 예외 일 수 없다는 생각이다. 조금은 유별날 것 같은 나의 부고를 미리 써봤다.  
 
‘1951년 여름, 철의 삼각지대에서 유엔군과 중공군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무렵, 17세의 재현은 황해도 몽금포 고향 집을 떠났다. 어머니에게 약 30일 후 돌아온다고 약속했다. 하늘의 요새 B-29 폭격기 등으로 무장한 유엔군이 반드시 돌아올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약속은 이뤄지지 않았다.
 
피난 간 곳은 남포 옆 유엔군이 점령하고 있던 작은 초도다. 이 섬에는 약 2000명의 피난민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재현은 이 작은 섬에서 소나무 세 개로 인디언 스타일 숙소를 만들고, 그 속에 마른 풀을 깔고, 냄비를 걸어 밥을 해 먹으며 혼자 살았다.  
 
배급받은 안남미와  산나물, 바다에서 잡아 온 소라와 해삼으로 연명했다. 맑은 날에는 중국 청도가 보이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청정 지역에는 해삼이 지천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해삼을 실컷 먹고, 한 바구니씩 가져왔다. 그때 ’바다의 인삼‘을 많이 먹어서인지 재현은 90세까지 건강했다.  
 


두 달이 지나도록 유엔군은 북상하지 못하고 38선에서 일진일퇴하고 있었다. 어머니 생각이 간절했다. 입고 나온 옷에서 보리알 같이 살찐 이가 꼬이기 시작했다. 낮에 모닥불을 피우고 옷을 벗어 털면 콩 볶는 소리와 괴상한 냄새가 풍겼다. 어머니가 끓여준 호박 된장국과 솜이불이 그리워 참을 수 없었다. 죽어도 어머니 옆에 가서 죽는다. 재현은 앞뒤를 생각하지 않았다.
 
북한으로 침투하는 반공 유격대 배를 타고 초도를 떠났다. 초도와 장산곶 중간 지점에 이르렀을 때 선장이 소리쳤다. 여러분 저기 장산곶을 봐요. 저 검은 구름은 폭풍우가 온다는 징조입니다. 선장은 구름을 보고 기후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배를 되돌려 초도로 돌아갔다. 누구하나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몇 주 후 미 해군 상륙함정 LST가 와 섬의 피난민을 모두 군산으로 후송했다. 떠들썩했던 동해 흥남 철수 작전보다 조용한 서해 철수 작전이었다. 만약 그 검은 구름이 아니었으면 재현은 북한으로 되돌아갔을 것이고, 그의 인생은 마침표를 찍었을 것이다.’
 
좀 장황한 부고의 일부분이다. 나는 장미공원에 묘지를 마련하고, 아들이 첫 봉급을 받았다며 맞춰줬던 양복을 수의(壽衣)로 표시해 놓았다. 정부에서 생명보험이란 명목으로 장례비가 나온다. 아들이나 딸들이 허겁지겁 부고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  
 
떠날 준비를 다 했다. 할 일이 없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오후 나는 새알심을 넣고 따끈한 팥죽을 끓여 먹었다. 그리고 김훈의 장편 소설 ‘하얼빈’을 읽었다. 비가 그치면 밖에 나가서 ‘고향의 푸른 잔디’, ‘메기의 추억’, ‘선구자’, 등을 들으면서 걸을 것이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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