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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서울 망신기

인생 8학년 중반에 ‘집 떠나면 다 개고생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집안에 급히 해결할 일이 있어서 서울 행을 강행했는데 돌아와서도 그 ‘씁쓸한 맛’을  잊을 수 없다.  
 
서울의 지하철은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면, 동대문에서 서대문 갈 거리를 3배는 더 걷는 것 같다. 다리가 아파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서, 이리저리 둘러 보다가 구석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가까이 갔다.  
 
이미 나보다 앞서 온 시니어들이 엘리베이터 문 좌우에 두 줄로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내리는 사람들이 다 내리고, 좌우에 있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막 들어가려는 찰라, 나는 그들을 손으로 젖히고 막아서며 유모차를 끌고 기다리고 있던 한 젊은 여성을 먼저 들어가게 하였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유모차의 옆에서 유모차 안에 있을 어린아이가 보고 싶어 허리를 굽히고 빠끔히 내려다보았다. 그때 갑자기 유모차 안에서 강아지의 머리가 불쑥 올라왔다. 화들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뭐 같은 세상….” 할 말이 없었다. 젊은 여성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무런 표정도 없이 문이 열리자 고개를 빳빳이 세운 채로 소리 없이 유모차를 끌고 도도히, 그리고 유유히 사라졌다.  
 


나는 뒤통수로 여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말 없는 뜨거운 눈총이 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두 눈 멀쩡히 뜨고 유모차 안의 아기 대신, ‘강아지님’을 우대한 잘 못의 결과였다. 서울은 변하고 있었다. 많은 세월, 여러 세대가 흘러갔다.  
 
서울은 이미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난 예전의 서울이 아니었다. 

주영세 / 은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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