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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당당하게 나이들기

최근에 나가게 된 모임이 있다. 모일 때마다 내게 차편을 제공해주겠다고 한다. 전에는 없던 일이다. 나이 먹은 사람이 너무 씩씩해 보이는 것도, 젊은 사람들의 호의를 번번이 외면하기도 어려워서 몇 번 도움을 받았는데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처음에 나를 픽업해 준 친구는 인근 도시의 모임 장소까지 가는 40여 분 동안 운영하는 사업체와 세 번이나 통화했다. 그다음 달에 나와 동행한 회원은 하교하는 자녀를 픽업하기 위해 도중에 먼저 떠나야 했다. 내 돌아갈 차편 때문에 작은 소동을 피할 수 없었다. 바쁜 젊은 사람들에게 더는 민폐를 끼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이를 먹으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있다. 이제는 주위의 연령층이 대부분 연하인데 처음에 그들과 나누게 되는 대화가 나이 언저리에서만 맴도는 것으로 미루어 나에 대한 최초의 관심사가 내 나이라는 것을 알았다. 초면에 젊어 보이신다고 하는 쪽은 자신이 어림짐작해 놓은 내 나이를 확인하려는 의도가 있는 듯했다. 사는 동안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어느 연령대이었는지를 묻는 질문속에서도 상대방의 나이에 대한 호기심이 엿보였다.
 
대체로 나이 든 사람들은 어디 아픈 데는 없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허리며 무릎이며 불편한 곳을 하소연한다. 이렇게 병증의 시초와 현재 상태를 고백하고 나면 노인의 나이를 대충 알게 된다. 내 나이가 무척 궁금했던 어느 분은 만날 때마다 어디 편찮으신 데는 없느냐고 했다. 잦은 안부 인사가 내 건강에 대한 옅은 불안감으로 바뀔 즈음, 그 궁금증의 실체를 알고 실소했다.
 


최근 친구의 교회를 방문했을 때였다. 가깝게 지낸다는 장로님 내외가, ‘동문이시라고요’ 반색하며 다가왔다. 대충 인사가 끝나자 내게, “몇 살이에요?” 하는 게 아닌가. 곧이어 ‘체중은 몇 파운드예요?’ 할 것만 같았다. 우리가 어린아이와 가장 먼저 하는 대화도 몇 살이냐는 질문이다. 아이의 이름을 먼저 묻는 서양인과 다른 점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한국인은 위아래를 확실하게 정해야만 노소간에, 친소(親疏)간에 진도가 나간다.
 
나이를 따져 상하를 분명히 해서 어른에게 합당한 대접을 하려는 좋은 의도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주위의 대부분이 고령의 문턱에 들어선 가운데서 혼자 받는 윗사람 대접은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그들과 교류하는 것은 친구로 지내려는 것이지 어른 대접을 받으려는 것이 아닐 때, 특히 대여섯 살 안팎 연하들의 엘리어네이트(alienate)는 소외감을 느끼게 한다. 이 세상에 섬길 어른이 없어졌다는 건 이승에서 가장 처량해진 나이라는 어느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연상의 상대방을 순수하게 윗사람으로 대할 마음이 아니라면 성급한 상하 관계 설정은 뒤로 미루는 것이 좋다. 서로 취미나 관심사가 같거나 동등한 인격체로 만나야 그 관계는 건강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착한 아랫사람 코스프레를 하다가 곤란하거나 쑥스러운 경우를 맞닥뜨리면 ‘장유유서니까’ 하며 등 떠밀리어 앞장서게 되는 상황은 노인들도 불편하다.  
 
나이는 장애가 아니다. 다만 조금 불편할 뿐이다. 남을 대접하고 배려할 수 있는 장치는 나이만이 아니고 우리 삶에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굳이 누구나 먹게 되는 나이로 드러내놓고 배려하는 모양새는 진정한 배려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 부족한 점이 유난히  부각되는 상황도 노인에게는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다. 일상생활 속 연령차별(ageism)이다.
 
나이는 결코 숫자에 불과하지 않다. 나이가 들면 기력이 떨어지고 의욕도 다소 사그라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이는 그러나 우리 세월과 함께한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다. 나이는 우리의 삶과 함께 무르익었고 우리의 시간과 함께 완성의 뜰로 다가가고 있다. 이 소중한 동반자 나이를 너무 의식하지 않고 저만치에 밀어 두어야 건강한 노년을 보낼 수 있다.
 
노년은 삶이지 현상이 아니다.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으며 그 장엄함에 심장이 아직 이렇듯 떨리는데 우리 나이에 대한 불편한 호기심과 미묘한 엘리어네이트에 동요하지 않는다.  
 
먼 밤 나이팅게일의 울음소리에 아직도 먹먹해지는 가슴이 있는데 착한 아랫사람 코스프레를 분별하고 일상생활 속 연령차별에 마음을 다치지 않는다. 귀하게 쌓아 온 나이를 주위에 의지하며 무기력하게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당당하게 나이 들어 가고 싶다.

박 유니스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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