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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너의 향기

너의 향기
 
향기는 오래 남았다 / 봄이어서 더 멀리 퍼졌다 // 꽃이 피어나듯 / 강물이 흐르듯 / 바람이 불어 오듯 / 음악이 흐르듯 / 너는 오고 있다 // 걸어 잠근 겨울 뒤로 / 혹독한 것들 뒤로 / 향기로 다가오는 봄 / 너는 그렇게 오고 있다 // 향기는 오래 남았다 / 까닭도 없이 바람이 불고 / 가슴을 쓸어내듯 / 봄비가 내렸다 //  파릇 파릇 / 살아나는 너의 향기
  
신호철

신호철

찌푸렸다 밝아지고, 비가 뿌렸다 난 데 없는 진눈깨비가 흩날렸던 3월의 날들이 지나고 4월의 첫날 환한 아침이 밝아왔다. 어제 밤도 심한 비가 선루프를 두드려 잠이 깨었는데 이렇게 청명한 봄날 아침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덱크 난간 위로 몸집이 뚱뚱한 뱁새 한 마리가 봄날 아침을 즐기고 있다.
 
손에 든 머그에서 풍기는 커피향이 봄날의 향기와 어울려 겨우내 깨어나지 못했던 어두움을 조금은 가볍게 해주었다. 가진 것이 있었다면 잃을 것도 있는 것이 마땅함에도 난 스스로 그 사실을 부정했다. 작은 것을 가졌음에도 그것이 전부라고 믿고 싶었다. 지난 겨울 내내 나의 한계는 깊은 웅덩이를 팠고 나는 그 속에서 외로움을 견디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깊은 어둠 속에 잠겼다.  
 


봄은 향기로 온다. 아직 꽃이 피지 않았음에도 어디로부터 오는 향기인지. 스치는 바람의 향기에 마음이 편해진다.
 
나의 산책길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두 길 밖엔 없다. 한길은 현관문을 밀고 나와 왼쪽으로 두 불락을 걸어 다시 오른쪽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철길 쪽으로 작은 호수가 있고 맞은편 쪽으로는 괘 큰 호수가 펼쳐져 있다. 이 길을 걸을 때마다 널뛰는 마음을 잔잔하게 손잡아주는 호수는 꼭 어머니의 따뜻한 가슴 같다. 눈이 펑펑 내릴 때에도 한겨울 찬바람이 몰아칠 때에도 나는 종종 마음을 내려놓으려 이 길을 찿곤 했다.  
 
오늘 나는 집 건너편 Quintin 길을 지나 어린 시절 동네 앞산 봉오리 같은 언덕을 오르며 봄향기를 맞고 있다. 바다내음 같기도 하고 풀내음 같기도 한 향기를 가슴속에 잔뜩 채우며 하늘과 가까운 곳을 걷고 있다.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후 찿아온 봄. 연둣빛을 담은 들풀들이 여기저기 머리를 들고 있다. 지난밤 내린 비로 파릇해진 나무가지들이 꽃눈과 잎눈을 쓸어내고 있다.
 
이 길은 주말이 아니면 퇴근길에나 저녁 해가 질 무렵 찿아 가는 길이다. 높지는 않지만 제법 석양이 아름다워 기슭에 앉아있자면 멀리 노을이 짙어가는 늦은 저녁부터 밤사이를 넉 놓고 즐길 수 있는 행복한 나의 퀘랜시아다. 얼마 전 갑자기 쏟아지는 빗줄기에 온몸이 젖기도 했지만 그 또한 봄의 향기가 아니던가. 얼굴에 빗줄기는 쏟아지고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집으로 뛰어오는길이 #리틀포레스트 #리틀포레스트 멀기만 했던 기억도 있다.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은 겨우내 움추렸던 마음에도 꽃이 피어나고 있다는 반증이다. 마음속에 잠겨있던 그대라는 그리움이 싹트기 시작하는 4월의 봄. 어디에선가 불어오는 바람의 향기. 봄날의 햇살과도 꼭 닮은 너의 향기였다.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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