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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후회의 책

‘고양이가 죽었다. 옆집 남자가 문을 두드리며 알려 주었다. 볼테르는 길가에서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나쁜 일만 계속 생긴다. 파혼하고 해고당하고 유일한 동무 고양이도 죽었다.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다. 밤 11시 40분에 약을 먹었다. 눈을 떠 보니 삶과 죽음의 중간 지대에 있었다. 시간은 밤 12시, 그곳은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라고 불리는 곳이다. 서가에는 수많은 책이 꽂혀 있었다. 그중 제일 두꺼운 책에는 로라가 살면서 했던 수많은 후회가 적혀 있었다. ‘볼테르를 밖에 내보내지 않았더라면!’ 책장을 펼치니 고양이를 집에서만 키우는 로라의 다른 삶이 있었다. 노라는 실수를 하기 전의 삶으로 걸어 들어갔다.’
 
매트 헤이그의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서 펼쳐지는 내용이다. 나 역시 도돌이표처럼 돌아오곤 하는 후회의 순간이 있다. 그 당시 퇴근 무렵이면 나는 항상 지쳐 있었다. 얼른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아들을 운동장에 떨구고 쌩하니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운동장 벤치에는 부모와 조부모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키고 있었다. 코치는 부모가 지키고 있는 아이들의 이름을 먼저 호명할지도 모른다. ‘내 아들은 대기석에 마냥 앉아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순간 스쳤지만, 나는 집으로 차를 몰았다.    
 
나의 후회의 책장은 얼마나 될까? 후회의 순간을 다시 살 수 있을까? 나는 삼십 년 전 그 운동장에 서 있었다. 집에 갈까 망설이다, 끝에 있는 벤치로 걸어갔다. 자그만 내 아들은 코치가 ‘안토니’하고 소리치자,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나도 ‘예이’ 소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아들은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며 다람쥐처럼 라인을 따라서 뛰었다. 자리로 돌아오는 아들의 얼굴이 의기양양하다. 몸이 좀 피곤한 것쯤이야, 저녁 준비가 늦어진들 어쩌랴. 경기가 끝난 아들을 태우고 돌아오면서 피자를 주문했다.  
 
또 다른 순간도 있다. 질기게 나를 물고 늘어지는 장면, 장소는 과거의 서울이다. 마지막 3개월을 사는 엄마는 나와 같이 하와이에 가고 싶어 했다. 채식주의자 그룹이 있는 그곳에서 암을 완치했다는 말을 누구에게 들은 것 같았다. 나는 곧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대답했다. 담당 의사는 환자의 몸 상태로 비행기 여행은 무리라고 말했다. 그때 직장에 휴직계를 내고 엄마를 모시고 하와이로 갔더라면? 엄마는 계속 사셨을까?  
 


소설에서 자신의 또 다른 삶을 살아본 노라는 고양이가 심근병으로 죽었음을 알게 된다. 수의사는 고양이가 사랑하는 주인 앞에서 죽기 싫어서 밖에 나갔을 것이라고 말해준다. 가슴을 치면서 한 노라의 후회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 노라를 죽음으로 내몬 생각이 사실은 그녀의 죄책감에서 비롯된 엉뚱한 상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기억과 상상은 자주 뒤섞이며 우리를 혼란에 빠뜨린다.  
 
노라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적인 삶에도 텅 빈 공허가 있음을 알았다. 그러자, 죽으려고 했던 자기 삶에 애착이 생겼다. 문을 두드리며 볼테르의 죽음을 알려준 앞집 남자, 친절한 애쉬에게 커피라도 사야 할 것 같다. 사이가 나빠진 오빠에게 먼저 연락할 것이다. 아 참, 옆집 할아버지의 약도 타다 주어야지. 황폐하게만 보였던 자신의 삶에도 마음을 나눌 사람이 있다니. 주위에 작은 친절을 베풀며 살아가는 것, 인생의 답은 ‘일상의 사소한 것’에 있는 것임을 노라는 죽음 직전에 알게 되었다.  
 
작가 매트 헤이그는 1999년에 외딴 섬의 절벽에서 뛰어내리려던 찰나에 머릿속에 빛이 번쩍했다고 한다. 그 후, 도서관에 파묻혀 자기 경험을 책으로 쓰면서 우울증을 치유했다. 팬더믹이 시작된 2020년에 이 책이 나오자,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고 한다. 당시 직장을 잃고 귀향하던 MZ 세대는 물론, 집에 갇혀서 우울해 하던 사람들에게 많은 위로와 공감을 주었다.

김미연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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