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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쌀의 언어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가슴 인연이다. 순간, 감동으로 마주했어도 바람에 날리는 향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작품이 있고 오랜 되새김의 여운으로 생각의 지표에 무늬를 남기는 작품이 있다. 쌀을 오브제로 회화, 설치 등 다양한 작업을 한다는 작가의 전시회가 있다기에 강렬한 호기심이 들었다. ‘밥상’ 밥을 먹으며 ‘젓가락 당신’ 등의 시(詩)를 써온 나에게 쌀이란 언제나 근원적 질문이었기에 더욱 작품을 만나고픈 목마름이 강했다.  
 
나는 쌀 작품을 만나러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맨해튼으로 향하였다. 첼시의 도심을 걸어 홀리시 타가트(Hollis Taggart) 전시장 문을 열고 들어섰다. 흰 공간의 바닥에 놓인 커다란 북과 둥그런 원, 높은 천장에 매달린 붉은 쌀 주머니! 압도적이었다. 한 작품, 작품 안으로 깊이 시선과 마음을 모으며 바라보는 나의 가슴에는 1000만 개의 이야기가 봇물처럼 터져 흘러내렸다.  
 
쌀! 쌀! 이란 얼마나 할 말이 많은가. 생존이고 밥인 엄마의 젖과 같은 순수의 모성! 하지만 그 쌀이 돈으로 재물로 욕망으로 둔갑하는 순간, 쌀은 전쟁이고 슬픔이고 참혹해지는, 쌀은 영원히 안식처이고 또한 영혼의 물음표가 아니던가? 50억을 뇌물로 받고도 무죄를 받는 쌀이 욕망의 똥 덩어리로 둔갑하는 참담과 생활고에 시달려 배가 고파 달걀 한 판을 훔치고 실형을 받은 40대의 눈물이 ‘내 엄마의 땅(my mother’s land)’이란 쌀 작품 앞에 떠올라 나는 주체할 수 없이 슬퍼지기도 하고 울분이 터져 나도 모르게 숨을 고르기도 하였다. 어떤 예술 작품은 이리도 곡진(曲盡)하다. 인간의 삶을 관통하지 않은 예술은 있을 수 없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포개듯 쌀 한 톨 한 톨을 가슴으로 주물러 어둠과 빛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예술가의 혼에 박수를 보낸다.  
 
세상은 어지럽고 쌀은 계단이 되었고 계급이 되었고 쌀은 공평하지 않다. 그러나 아직도 세상에는 묘판에 정성을 다해 볍씨 뿌리듯 소외당한 자를 위해 마음의 밥을 지어 나누는 초록 대지 같은 선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꿈꾼다. 나는 청색으로 풀어놓은 바다와 하늘 아래 산과 대지의 굴곡과 평안이 얼개로 누워 있는 드림 랜드(Dream Land) 작품 앞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오래 서 있었다.  
 
전시회는 끝나고 작가가 전해 준 각자의 메시지를 가슴에 안고 총총히 빗속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이름 앞에 쌀의 여신, 쌀 작가라는 호명을 지닌 이 작가가 궁금하여 구글 검색을 해 보았다. 일본대사관 건너 소녀상 앞에서 온몸에 흘러내리는 쌀을 받아내며 대사관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채 침묵으로 응시하는 그녀의 영상을 보며 나도 잠시 모진 삶을 살아온 그분들을 위하여 기도드렸다. 그렇다. 역사를 관통하지 않은 인간의 삶이란 있을 수 없다. 한 예술가로서 방관하지 않고 역사 속에 아픈 사람을 위로하고 어루만져 달래는 예술가의 위무(慰撫)를 다하는 이하윤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날 내가 본 작품은 오랜 나의 질문, 밥이란? 삶이란? 생존이란?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떻게 빛으로 살아야 하는가? 의 물음을 다시 깊게 사유하게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춤추는, 서슬 푸른 눈으로 읽은 절창의 서사시가 분명하였다고 나직이 읊조렸다.

곽애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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