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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Multiverse

2023년 3월 12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의 말레이시아 출신 ‘Michelle Yeoh’가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아카데미 95년 역사상 처음으로 동양 여성에게 주어진 여우주연상이다.
 
이 영화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도 개봉됐다. 우주, ‘universe, 유니버스’가 맞닿아 이루어진 다중(多重)우주, ‘multiverse, 멀티버스’라는 천문학설을 토대로 한 공상과학 스토리!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수많은 다른 우주에서 현세의 나와 공존하는 나를 생각한다. 성능 좋은 컴퓨터의 힘을 빌려서 나의 삶에 대한 동시다발적 기억을 더듬어 순식간에 시공을 여행하는 정황을 상상하면 정신이 아찔해진다. 엄청난 발상이다.
 
여주인공 ‘에블린’은 남편과 함께 미국에 이민 와서 빨래방, ‘laundromat’을 하는 성미가 거친 여자. 세금보고 문제로 ‘IRS, 국세청’에 불려간다. 남편 ‘웨이몬드’는 멀티버스의 비밀과 운용방식을 알고 있다.
 


에블린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남편이 이혼 청구서류를 만지작거리는가 하면, 딸, ‘조이’가 레즈비언 애인을 집에 데려온다. 얼마 후 국세청 담당 요원과 조이마저 멀티버스의 대혼란에 참여한다.
 
영화는 급기야 초현실주의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한다. 부조리, ‘absurdity’의 극을 달리는 사건들이 꾸역꾸역 터진다. 아시아계 이민생활의 어려움과 엄마와 딸 사이의 ‘세대 간 갈등’이 황량한 실존주의와 을씨년스러운 허무주의를 넘나든다. 그렇구나! 멀티버스가 만약 실제로 존재한다면 우리는 아무래도 니힐리즘에 봉착하는 위기를 모면하지 못할 것 같다.
 
급기야 딸 조이는 자신의 가장 근원적인 니힐리즘, ‘Everything Bagel’이라는 이름의 본색을 드러내며 엄마 에블린에게 도전장을 던진다. 베이글은 블랙홀이나 다름없는 무서운 파괴력과 허무(虛無)를 상징한다. 에블린은 딸의 니힐을 한사코 수호하는 똘마니들과숨 가쁜쿵푸 사투를 벌인다.
 
에블린은 무질서의 화신인 손녀딸 조이를 죽이라는 권고를 내리는 아버지의 꼰대스러운 발언에 강하게 저항하면서 캄캄한 베이글 속을 향하는 딸을 간절히 만류한다. 그리고 모녀는 서로를 얼싸안고 화해한다. 그들이 멀티버스의 광기와 부조리를 감싸 안는 순간이다.
 
이 장면을 두고 미동부에서 목소리가 큰 ‘Vox Media’는 ‘millennial parental apology fantasy’, 즉 밀레니엄에 일어나는 부모들의 ‘사과(謝過) 판타지’를 언급한다. 나는 이것을 2차 세계대전 후유증으로 매몰찬 삶을 살아온 부모들이 점차 노쇠하는 과정에서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집단적 현상으로 해석한다.
 
‘absurdity, 부조리’의 형용사 ‘absurd’는 고대 불어와 라틴어에서 음정이 맞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남들과 함께 합창을 못 하는 상태다. 사나운 아내와 반항적인 딸 앞에서 웨이몬드는 말한다. “The only thing I do know is that we have to be kind. Please, be kind. Especially when we don‘t know what’s going on.” - “오직 내가 알고 있는 건 우리가 친절해야 한다는 거야. 제발 친절해 줘. 더구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를 때는.” 친절이야말로 AI, 인공지능이 도저히 따라오지 못하는 인류의 뛰어난 속성이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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