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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사랑하기 좋은 날

이기희

이기희

봄이다. 봄이 왔다. 하늘 높이 날고 싶어진다. 어릴 적엔 하늘 높이 날아가는 꿈을 자주 꾸었다. 발뒤꿈치를 세우고 수직으로 상승해서 몸을 가지런히 평행으로 누이면 하늘 끝까지 날 수 있다. 자주 이 꿈을 꾼 탓에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려 발뒤꿈치 들고 폴짝 뛰어보다가 무릎이 까지기도 한다.  
 
키 클려고 그런 꿈 꾼다며 어머니는 우리 희야 미스코리아 될 거라고 좋아하셨다. 비슬산(琵瑟山) 자락 타고 낙동강을 구비구비 돌아 현풍 읍내 뒷산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마른 풀잎 사이로 연녹색의 잎들이 점을 찍기 시작하면 그 사이로 진홍빛 참꽃이 얼굴을 드러낸다. 아름드리 핀 참꽃이 비슬산 대견봉 이래까지 군락을 이루어 핏빛으로 물들일 즈음 봄은 달콤하고 달달한 사랑의 역사를 쓴다.  
 
삼국유사 ‘포산이성(苞山二聖)’에는 관기(觀機)와 도성(道成), 두 선사의 우정을 담은 기록이 전해진다. 포산은 비슬산의 다른 이름이다. 관기는 비슬산 남쪽 암자에 기거하고 도성은 십리쯤 떨어진 북쪽 굴 속에 산다. 둘은 서로의 만남을 위해 바람을 타고 나무가 휘어지는 방향을 보고 마중 나간다.  
 
‘서로 찾아 달을 밟고 운천(雲泉)을 희롱하니 두 늙은이의 풍류 몇 백 년이 되었는가? 구렁에 가득한 연기와 안개 옛 나무에 남아 있어 구부렸다 일어섰다 한 그림자 지금도 서로 맞는 듯하네.’ 나무가 흔들리는 모양을 보고 자신을 찾아오는 친구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으니 얼마나 자연과 합일된 삶을 살았던 것인가를 알 수 있다. 깊은 우정도 사랑이 없으면 헛개비 장난에 불과하다.  
 


우정이 끈을 묶는 인연이라면 사랑은 작은 풍랑에도 흩어지는 실체 없는 바람이다. 사랑의 묘약은 꿀맛처럼 달콤하지만 독약처럼 잔인하다.  
 
사랑은 위험한 장난이다. 장난은 신나고 재미있다. 사랑을 취미 삼아 갖고 놀면 어릴 적 잘못 저지르고 종아리 맞을 때처럼 인생의 회초리를 맞는다. 가슴 속 타오르는 불꽃을 조절하지 못하면 재가 되거나 풍선처럼 터져 찢어진다.  
 
사랑을 하면 허공을 붕붕 떠다닌다. 지상에 발 붙이고 살던 날들을 잊어버린다.  별 거 아니다 말해도 사랑은 황홀한 집착이다. 무얼 해도 좋은 게 사랑이다. 만지고 싶고, 안고 싶고, 느끼고 싶은 게 사랑이다. 조건과 욕망, 필요와 타산으로 맺은 사랑은 비열한 고통을 낳는다. 세상에서 가장 큰 비극은 살 맞대기 싫은 사람과 사는 것이다. 사랑은 타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이다. 나의 참 모습을 타인의 삶에 접목시키는 노력이다.  
 
사랑에는 성공도 실패도 없다. 못다한 아쉬움과 눈물, 회환이 남는다. 나쁜 사랑도 사랑이다. 처절한 눈물과 반성, 장렬한 서사시를 남긴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건 사랑을 하지 않는 일이다. 한번도 누구를 맘 속에 품지 않는 일이다. 함께 있어도, 혼자라도 외롭기는 매한가지다. 
 
물안개나 아지랑이, 찬란한 무지개가 떠오르는 창가에서 그대 이름을 살며시 불러보라. 어둔 밤하늘에서 별사탕처럼 우루루 사랑의 꽃잎이 떨어진다. 가슴을 도려내던 첫사랑의 추억도 세월의 강가에 서면 따스하게 발목을 어루만진다.  
 
사랑을 하자. 참꽃처럼 붉고 빛나는 진홍빛 사랑을 하자. 사랑 없는 오늘보다 후회하는 내일이 더 아름답다. 억겁으로 남을, 순간에서 영원으로 남을 사랑의 언어들을 가슴 깊이 새기자. 사랑하기 참 좋은, 화창한 봄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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