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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마음이 걸려 있는 산

코로나19로 시작된 재택 근무가 한창일 때였다. 아들은 한계를 체감하였는지 자동차에 컴퓨터 하나와 의류 몇 점을 싣고 샌호세에서 시애틀로 떠났다. 그곳에서 한달 동안 머물며 일하면서 간간이 여행도 하며 일상의 변화를 갖기 위한 의도였다. 잘 도착하였다고 전화가 왔다. “어머니, 제가 시애틀에 있는 동안 다녀갈 수 있으세요?” 숲속에 있는 작은 집의 전망이 기대 이상이라고 한다.
 
가뭄에 단비 같은 제안이었다. 서슴없이 가겠다고 대답을 하게 된 것은 마운트 레이니어 산행을 염두에 둔 탓이다. 늘 마음이 걸려 있는 산! 초대를 받아들인 후 여행 가방을 꺼내 먼지를 털며 준비했다.
 
평상시 행동은 아다지오 템포다. 전화 통화 후 민첩하게 움직이는 자신에 놀랐다. 마음이 들떠 저녁 준비가 잘 안된다. 조리대 위에 놓여 있던 음식 재료들을 냉장고에 다시 넣어 두고  배달 피자로 메뉴를 바꿨다. 언제든 기회가 된다면 그 산을 가보고 싶은 막연한 바램이 있었다. 몇 해 전에 가서 산중턱 즈음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먹구름이 운무로 뒤덮여 아름다운 산 봉우리를 전혀 볼 수 없게 되었다. 아쉽지만 만년설 끝자락에 위치한 파라다이스 안내소에서 차 한 잔 마시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후 봄 가을을 갈마들며 드디어 다시 갈 기회가 생긴 것이다. 옛 친구를 만나는 듯한 설렘을 안고 집을 나섰다. 혼자만의 여행이다. 시간이 여유로웠고 짐도 간단해 마음이 홀가분하다.
 


모든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대 가족이 함께 다닐 때와는 비할 바가 아니다. 발걸음이 너무 가벼웠나? 탑승 게이트를 엉뚱한 곳으로 찾아가게 되어 공항 내부를 한 바퀴 돌아야 했다. 초등학교 놀이터 만한 공항에서 길을 잃었다는 것을 손자 손녀가 알게 될까 조심스럽다.
 
그때부터 가방 맨 어깨가 한 쪽으로 기울었다. 옆에서 거들어 줄 사람이 없다. 홀로 다니던 여럿이 다니던 호불호는 따르기 마련인게다. 음양이 공존하는 인생사, 다 좋을 수는 없는가 보다.
 
겨우 출구를 찾아 마지막으로 탑승했다. 비행기 안은 만석이었다. 승무원을 포함해 모두 마스크를 쓴 승객들을 보니 결코 편안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한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떠날 기색이 없더니 기내 방송이 나온다. 갑작스런 한냉 기류가 발생하여 20명이 내려야 도착지에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다고 한다. 최첨단 기기가 동원되어 알아낸 정보다. 지원자에게는 250달러의 항공사 할인권을 준다고 한다. 횡재 차원은 아니더라도 귀가 솔깃해졌다. 안전 벨트를 풀었다, 잠갔다 하며 고민했다. 문제가 있는 여객기로 판단되어 다른 비행기편으로 가기로 했다. 19번째로 내리는 승객이 되었다.
 
출구에서 기다리던 사무원이 쿠폰을 건네주면서 상냥하게 설명해 주었다. LA 공항까지 택시로 가서 5시간을 기다리면 다음 비행기가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것이라고 한다. 자세한 설명을  듣고 보니 후회 막급이었으나 우대권 소식을 가족에게 알리는 순간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LA 공항에 가서 지루함을 달래느라 책 한 권 사서 읽다보니 어느새 대기실 창 밖으로 보이는 활주로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한 나절을 기다려 탄 비행기, 꽉 조이는 마스크를 쓴데다 기내에서는 코로나 때문인지 음료수 서비스도 생략되었다.
 
아침에 대문을 나선지 거의 11시간이 지나서 시애틀에 도착했다. 공항 안내 표시를 따라 에스컬레이터 몇 번 바꿔타고 따라가니 그제서야 주차장이 나온다. 마중 나온 아들의 차를 보니 긴장이 풀려서인가 다리가 후둘거린다. 장거리 비행도 아닌데 국제선에서 내린 것 같은 피로가 엄습한다.
 
늘 차문을 열어주는 아들의 습관은 지극히 평범한 일이나 우대를 받는 느낌을 들게 한다. 앞좌석에 백이 놓여있다. “시장하실 텐데 우선 요기하세요”. 제법 구색 맞춘 반찬에 따끈한 밥과 음료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도시락까지 만들었어?” “어머니도 예전에 우리가 방학을 해서 집에 올 때는 이렇게 해 주셨지요.” “몽키 씨 몽키 두(monkey see, monkey do)” 계면적게 말끝을 흐린다. 밤늦게까지 영업하는 식당도 마땅치 않아 잘하지 못해도 대강 준비했다고 한다.
 
아침 뉴스에 잠이 깼다. 밤새 내린 비로 산악 지역은 눈으로 덮여 곳곳의 길이 막혔다고 한다. 스노우 체인이 없으면 600달러 벌금이란다. 그다지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아들은 여행 계획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지만 산행 이외에는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아 대답이 궁해진다.
 
때로 가보고 싶었던 산! 때때로 생각났던 산, 마운트 레이니어! “Mountains calling, I must go” 그 소명에 답하여 세콰이어, 요세미티, 레이니어 등 미국 서부 국립공원을 개척하며 환경 보호의 선봉자로 일생을 바쳤던 존 뮤어의 어록이 생각난다. 자연을 하나님의 창조를 계시하는 신성한 곳으로 구분했던 그의 창조주에 대한 경외심은 대단하였다.
 
존 뮤어를 비롯하여 당대의 몇몇 선각자들이 일구어 놓은 공력으로 지금까지도 세계 각지에서 모여드는 수많은 방문객들이 미 서부 국립공원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어마어마한 혜택이다. 이 세대에 와서 어느 부호나 세력가가 그러한 정신적 자산을 기부할 수 있겠는가?
 
존 뮤어의 자전적 삶에서 특히 놀라운 일은 그의 부친의 철저한 기독교 교육을 받으며 구약 성경의 3/4과 신약 성경 전체를 외웠다 하니 상상을 초월한다. 주일학교에서 열리는 성경 암송 대회때 서너 구절 외우고 어깨가 으쓱하여 상을 기다리며 줄을 서던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코로나로 양로시설에서 가족간에 생이별을 하고 지내는 안타까운 시대에 산에 한 번 못 오른다고 그다지 실망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산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터이니 고마운 일 아닌가!
 
숙소 주변으로 산상 수련회의 아침 같은 서정이 감돈다. 창가로 번져 내리는 빗방울을 따라 마음은 이미 레이니어 산기슭을 오르고 있다. 그 산자락에서 허밍으로 찬양을 올린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워 볼 때,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무채색의 그리움을 남긴 채 레이니어 산행의 꿈은 비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야생화가 피어 오르는 봄날에 다시 한번 찾아오리라 스스로 약속하건만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항공사에서 받은 상품권을 책갈피 깊숙히 넣어둔다.  

독고 윤욕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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