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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딸기나무

딸기는 넝쿨에만 달리는 줄 알았다. 약 2년 전 우리가 살고 있는 주택 단지에 식물원 트럭이 묘목을 싣고 왔다. 우리 집에 배당된 나무는 원산지가 지중해 연안인 딸기나무(Arbutus unedo)였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나무가 시원치 않아 보였다. 가느다란 나무 꼭대기에 시들시들한 잎사귀가 엉켜있었다. 싱싱하지 않은 잎사귀가 마음에 걸렸다.
 
우리 집 앞에 심었으니 싫든 좋든 우리 나무다. 양자처럼 정성스레 보살폈다. 물과 비료를 주고 흙도 부드럽게 손질해주었다. 습기가 충분한지 확인하기 위해 매일 나무젓가락으로 흙을 찔러보았다. 젓가락에 흙이 묻어나오면 습기가 충분하고 깨끗하면 습기가 부족한 것이다.  
 
나무를 매일 유심히 관찰했다. 아래쪽 잎들이 누렇게 변하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간호한 탓인지 위쪽 잎들은 아직 푸르다. 분홍색 구슬방울 꽃도 몇 송이 피었다. 나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주었다. 죽어가는 환자도 머리카락과 손톱은 자라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래쪽 잎들이 마르고 있었다. 딸기나무는 긴 병에 걸린 사람처럼 천천히 죽고 있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왜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나, 뿌리를 뽑아보고 싶었다. 수목 전문가를 데려다 진단해보고 싶었지만 주택 관리 회사에서 심어준 나무라 마음대로 할 수도 없었다.  
 


한국 전쟁 전 내가 살던 북한에서 결핵에 걸린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결핵에 걸리면 몇 년을 두고두고 앓다가 사망한다. 핏기없는 얼굴, 길게 늘어진 목, 기침을 쿨룩쿨룩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아직 선하다. 그들은 오랜 투병으로 가족들을 애타게 했다. 이 나무도 나를 애타게 하였다.
 
나의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딸기나무는 일 년 만에 죽고 말았다. 뽑아 버릴 수도 없어, 그냥 내버려 두었더니 몇 달 만에 저 혼자 쓰러졌다. 나무나 사람이나 쓰러지면 흙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길 건너편 딸기나무는 크게 자라서 푸른 잎과 주홍 구술 방울을 자랑했다. 딸기도 달렸다. 딸기는 씨가 있으며 망고, 살구, 복숭아를 합친 맛이라고 한다.  
 
길 건너 딸기나무는 누구도 돌봐주지 않았지만 잘 자랐다. 혹시 우리 딸기나무는 내가 과잉보호했는지도 모른다. 너무 들볶았는지 모른다. 어린아이도 지나치게 보호만 하면 자란 다음 사회생활에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비바람이 불기 전 식물원 일꾼이 와서 딸기나무 묘목을 다시 심었다. 다음 날 온종일 비가 내렸다. 잎사귀도 푸르고 싱싱하다. 영롱한 구술방울꽃을 피우는 날을 기다려보자. 이번엔 나무를 건드리지 않고 자연, 다시 말해 하나님께 맡겨 볼 생각이다.

윤재현 / 연방정부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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