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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정중한 통지서

얼마 전에 낯선 우편물 하나를 받았다. 캘리포니아주의 가든그로브 경찰국 발신물인데 애리조나주의 우체국 직인이 찍혀 있는 우편 증명서(Certificate of Mailing)라는 것이다.  
 
‘정중한 통지(Courtesy Notice)’라고 되어 있는 편지 제목에 안심은 하면서도 좀 불안한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내용은 어느 날 몇 시에 어느 지점에서 번호판이 XXX인 자동차가 신호를 어기고 우회전을 해 가주 교통 규칙을 위반했다는 증거로 현장 사진을 동봉해서 보낸 일종의 내용 증명이었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나의 얼굴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더 자세한 것은 인터넷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60일 후에 경찰에 출두해야 한다고 돼 있었다. 약속 날짜를 잡고 경찰서에 갔더니, 교통 위반 티켓은 발부하지 않고 벌금만 부과하는 경고 조치로 종결하겠다는 담당 경관의 말에 고무된 채 경찰서를 나섰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교통 법규에 그리 민감하지 못한 나는 걸핏하면 법규 위반으로 애를 먹는다. 지난 2014년 실비치로 이사 온 직후에도 티켓을 받아 법원에 가서 550달러를 납부한 전과(?)가 있다. 앞차를 따라 좌회전을 하다 그만 신호 위반에 적발된 것이다. 이주 신고비치고는 꽤 비싼 대가를 치렀다.  
 


그 후 지금까지도 나는 그 길을 의식적으로 회피하고 있으며, 신호등이 파란불에서 노란불로 바뀔 때는앞차를 따라 좌회전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자율 규칙을 글로 써서 운전석 앞에 붙여 놓고 다닌다.  
 
편지 봉투에 찍힌 애리조나주 발신 도장은, 오래전의 일을 상기시킨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애리조나에서 보내오는 ‘정중한 통지서’를 받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40여 년 전에도 받은 적이 있다. 애리조나와 캘리포니아 접경을 관할하는 애리조나 경찰은 캘리포니아 면허 판을 단 자동차는 집중적으로 단속한다는 말을 그 무렵에 들은 기억이 떠오른다.  
 
주말을 이용하여 가족과 함께 애리조나로 나들이 가는 가주 주민들은, 애리조나 발신 ‘정중한 통지서’를 받을 기회를 스스로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속도 제한 50마일이 어느새 40마일로 바뀌고 40마일이 25마일로 변하는 장단에 맞추어 가기가 쉽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캘리포니아의 주말 운전자들은 애리조나 경찰이 쳐놓은 거미줄에 걸려들 잠재적 먹잇감이 됐던 것이다.  
 
정중한 형식으로 빡빡한 예산을 보충하는 기법을 활용하는 애리조나 경찰의 ‘정중한 통지서’가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저 오래전의 기억을 더듬어 즐거운(?) 추억 삼아 떠올리게 된 것일 뿐, 다른 의도가 없음을 밝혀 둔다.

라만섭 / 전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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