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 피해자의 더 처절한 복수혈전
더 글로리 시즌 2
(The Glory, Part 2)
어떤 경우라도 부모의 심정은 지옥 같았을 것이다. 이 지옥의 현장이 지금 한국에서 두 가지 다른 형태로 화두가 되고 있다. 하나는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정순신 아들 학폭사건’이다. 드라마와 실제 사건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정서는 대체로 피해자에 대한 동정과 가해자를 향한 분노이다.
피해자 문동은(송혜교)이 고등학교 시절 자신에게 폭행을 가하고, 고데기로 팔과 다리를 지졌던 4명의 가해자들을 상대로 치밀한 복수를 펼쳐나가는 내용의 드라마 ‘더 글로리’는 허술하게 현실적이고 적당히 과장된 B급 드라마임에도, 지난해 12월 공개 직후 무난히 비영어권 TV 드라마 시청 순위 1위에 올랐다. 야만과 폭력이 학교라는 공간에 만연한 시대에 한국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을 토대로 한 K드라마가 글로벌 시청자들의 공론의 장에 학폭이라는 이슈를 제대로 올려놓았었다. 그리고 파트 2 공개와 때를 맞춰 정순신 아들 학폭사건이 터졌다.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 문동은이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해는 ‘왕따’가 맹기세를 펼치던 2004년이다. 왕따라는 단어가 최초 사용된 것은 1997년. 이후 한국사회는 있는 자들과 없는 자들의 빈부 격차가 갈수록 극심해져 극도의 양극화로 치달았다. 있는 자들, 특히 공인들의 폭력적 갑질이 종종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한때의 ‘왕따’는 이후 세대에게 학폭으로 진화하여 하나의 사회현상이 되어 버렸다. 학폭은 분명 양극화의 한 단면이다.
“난 분노에 성실하고 싶어요”라는 대사가 말해주듯 문동은이 사는 이유는 복수를 하기 위해서다. 문동은 착한 사람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녀를 방관했다. 그 대표적 방관자는 문동은의 담임 교사이다. 그는 가장 적극적인 방관자이며 심지어 문동은의 복수의 대상이다. 어린 시절 문동은을 지켜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방관자는 본질적으로 가해자와 다름없다.
학교폭력은 물리적인 피해에서 그치지 않는다. 괴롭힘을 당한 사람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몸에 난 상처보다 더 깊은 건 마음에 새겨진 상처다.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만들며 나아가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게 한다.
트라우마는 복수극의 필수요건이다. 문동은의 불타는 복수심에 치우쳐 그녀의 정신적 트라우마가 미흡하게 처리된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파트 2에서 문동은의 정신적 피해와 그에 대한 보상심리가 얼마나 깊이 있게 다루어질지 궁금해진다. 트라우마에 대한 깊은 탐구가 필요한 대목!
학교라는 공간은 모든 사람이 사회화를 처음 경험하는 곳이다.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의 무한 경쟁으로 인한 소외와 왕따 등 모든 사회적 문제들이 싹트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더 글로리’는 경찰, 피해자의 부모까지도 가해자의 재력 앞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부모 세대의 부조리와 학교 폭력의 관련성을 부각시켰다. 또한 계급적 불평등, 공권력의 부패와 같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들을 짚어냈다.
학폭은 결코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다. 드라마에서처럼 치밀하게 짜인 악의 거미줄 안에서 자행되지 않을 뿐이다. 학교 폭력은 자본주의 사회 어디에나 존재하는 고질적 병폐이며 부의 양극화가 낳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피해자가 사회제도 밖에서 복수극을 펼쳐가는 이야기는 자칫하면 폭력의 잔인함 속에 본질이 묻혀버릴 수 있다. 우리 주변의 적지 않은 수가 직간접 가해자 또는 피해자이고 비겁한 방관자로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더 글로리’는 아직 절반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1부에서는 당한 만큼 갚아 준다는 문동은식의 복수를 보았다. 파트2에서문동은은 간혹 위기에 몰리겠지만 그녀의 잔인한 복수혈전은 계속될 것이다. 문동은의 복수와 생존의 서사에서 그치지 않고 ‘더 글로리’의 종영 이후에는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건설적인 논의, 지구촌의 담론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물론 방관자의 위치에서 벗어나려는 우리 모두의 노력을 전제로 한다. 학폭 피해자들은 배신의 처절함보다 방관의 비겁함에 더 큰 상처를 받는다.
김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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