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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50차례 방문 구호…북한 탈출 배병준씨

미국서 사업가 성공
농업 향상 등 기여

배병준씨

배병준씨

10대 때 북한을 떠나 미국에서 성공적인 기업가가 되어 북한에서 수많은 생명을 구한 한인의 이야기가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8일 폭스뉴스는 인도주의자이자 작가, 수상 경력이 있는 영화 프로듀서인 배병준(85.사진)씨와 그의 회고록 ‘약속: 북한에서 태어난 미국인의 삶과 사랑(Promises: The Life and Love of an American Born in North Korea)’을 소개했다.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배씨는 1997년부터 20여년 동안 북한에 50번 이상을 다니며 구호활동을 펼쳤다.  
 
회령과 진길주 지역 보육원을 돕고 농사 재료를 공급하다가 시나리오를 쓴 것이 최초의 북미합작영화 ‘산너머 마을(1975)’이다.  
 


배씨는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이 발발한 10대 시절 중국 국경을 통해 남한으로 넘어왔다. 당시 인간의 잔혹함보다도 더 최악이었던 것은 한반도의 겨울 날씨였다고 그는 기억했다.
 
배씨는 “북한의 최북단은 시베리아와 기후가 비슷하다. 살기 위해 계속 움직이거나 얼어 죽어야 한다”며 “아무것도 먹지 않고 6주 동안 걸었다”고 말했다.  
 
배씨는 한국에서 살다가 1959년 유학생으로 미국에 왔다.  엔지니어링 학위를 취득한 뒤 성공적인 커리어 경력을 쌓았고 포천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 CEO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그는 한 지인의 권유로 북한에 대량의 음식을 보내게 됐고, 이는 그가 고국에 돌아갈 수 있는 문을 열어주었다고 전했다.
 
배씨는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여행을 금지한 2019년 전까지 거의 100만 달러에 가까운 돈을 들여 중국에서 옥수수, 감자, 머리핀, 세탁기 등을 북한으로 조달했다.  
 
또한 중국으로 가서 농장 전문가를 고용해 데려가 북한 주민들에게 농작물을 기르도록 가르쳤고, 예년보다 1000배 더 많은 쌀을 생산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고 전했다.  
 
배씨는 북한에 고아가 많은 이유는 부모가 굶어 죽었기 때문이라고 전하면서 보육원으로 옮겨진 아이들 역시 설사와 물 부족의 이유로 죽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겨울철 땅이 얼어붙었기 때문에 시체를 헛간 옆에 더미로 쌓았다가 봄이 오면 땅을 파고 묻는다며 북한의 처참한 현실을 전했다.  
 
그는 “우리는 북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며 “우리가 아는 것은 언론이 미사일과 김정은에 대해 말하는 것뿐이다”고 지적했다.  
 
배씨의 저서는 이런 북한의 현실과 그들을 향한 인도주의적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아내와 어머니가 심어준 기독교 신앙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전했다.  
 
배씨는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고 기꺼이 돕는 과정에서 믿음이 자랐다”며 “내 마음은 그 아이들을 돕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매초 내 마음은 그것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 책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2300만 명의 북한 주민들을 대변하길 원한다”고 전했다.  

장수아 jang.suah@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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