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삶] 친구
좋은 일이 없는 것이 불행한 것이 아니라/ 나쁜 일이 없는 것이 다행한 거야./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세상이나 원망하던/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자기 하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은/ 실상의 빛을 가려버리는 거야./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세상에 발길질이나 하던/ 나는 부끄러웠습니다.-천양희 시인의 ‘친구’ 부분
도반(道伴)은 불가에서 쓰는 말로 ‘같은 길을 서로 도우면서 함께 가는 좋은 벗, 도(道)로써 사귄 친구’란 뜻이다. 일반적으로 쓰는 벗, 친구, 선우, 동무 등과 별반 다르지는 않은 뜻이리라.
나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언제부턴가 이 도반이란 말이 좋다. 벗이나 친구라는 말도 정겹지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끌어주고 밀어주며 나란히 걷는 수행자의 모습을 연상하게 해서인지 도반이란 말이 듬직하게 여겨진다.
도반이라는 말에서는 서늘한 안도감이 있다. 인생의 큰 깨달음을 찾아가는 길에서, 넘어지고 주저앉을 만큼 힘이 들고 지쳐있을 때 위로를 건네기도 하지만 마음의 산란을 이기지 못하고 방황할 때는 가차 없이 질타하기도 하는 바르고 꼿꼿한 벗이라는 의미 내포가 크다고 생각되어서인듯하다.
어느 강연회에서 문정희 시인은 문학을 하면서 진정한 도반을 만나기 어려웠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문학의 길은 수행자의 길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누구나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시대이긴 하지만 여전히 문학이란 지난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을 더듬거리며 걷는 외길이다. 그래서 함께할 사람이 필요하고 문우(文友)라는 믿음직한 명칭을 쓰기도 한다.
문학은 민족이나 개인의 정서가 동반되는, 삶을 미적으로 재해석하는 일이기도 하다. 깊은 통찰력으로 면밀히 들여다보며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길이다. 그래서 외로운 길이기도 하다. 언제고 그 자리에서 격려와 질타를, 사랑과 매를 내리칠 친구가 있다면 아무리 고단한 여정이라도 좀은 수월하기도 할 터이다.
멀고 험한 인생의 목적지를 바라보며 뜻을 맞춰가는 동행자인 친구, 삶의 가치를 공유하며 흐린 날이나 갠 날이나 나란히 걸어갈 수 있는 친구가 있는 사람은 인생의 반은 성취한 사람이라고 한다. 부끄러움을 일깨워 주는 친구가 있는 사람은 경전 한 권을 탐독한 것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일등만이 승자로 살아남는 지나친 경쟁시대, 우리는 서로에게 경쟁자가 되는 위기감 속에 있다. 벗으로의 관계를 잘 유지하며 지내다가도 결승점에 이르면 경쟁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관계가 되는 살벌한 현실에 직면하곤 한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를 사귀기가 어렵다고 한다. 외로움을 호소하면서도 친구를 사귀며 부대끼기보다 외로운 쪽을 택하기도 한다. 좋은 친구를 얻는다는 건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데, 친구를 염원하지만 정작 나는 누구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려는 일에는 인색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삶의 지지대가 되어주는 도반과도 같은 친구를 떠올려보는 일은 뭉클하다. 절망의 고비를 견뎌낼 수 있게 해주는 친구, 응원을 아끼지 않는 묵묵한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당신은 꽤 괜찮은 인생을 사는 것이리라.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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