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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칼럼] 쿠오바디스 미국경제

아침의 루틴이 되어버린 카페라떼 한 잔을 사서 길가에 잠시 서 있는데 금발 모녀가 씨티뱅크가 어디인지 묻는다. 오던 방향으로 되돌아가면 5분도 안 걸린다고 안심시킨다. 그런데 뉴요커의 전형과는 거리가 있고, 한국인 악센트가 강한 내가 알려줘서 그런지 엄마는 못 믿는 눈치다. 신호가 왔는데도 건너지 않고 백인 아저씨에게 다시 길을 묻더니 되돌아온다. 내 말이 맞는다고 말해주려다 나도 몰랐던 씨티뱅크가 그쪽에 있었나 싶어 혼란스럽고 자신감이 떨어져 그만둔다. 책상에 돌아와 구글지도를 검색해보니 이런 내가 맞았다. 추운 날씨에 몇 배는 더 헤매고 다닐 모녀를 생각하니 믿음을 주지 못한 게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다.
 
만장일치로 금리인상 속도를 25bp로 낮춘 2.1일 FOMC 기자회견, 지난해 고물가 상황이 공식화되고 연준이 이에 대응하여 공격적 금리인상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파월 의장 입에서 디스인플레이션 단어가 나왔다. 그것도 무려 15번. 연내 금리인하(pivoting)까지 생각이 앞서 나갔던 시장은 환호를 보냈다. 
 
그런 환호와 안도는 이틀 사이 실망과 당혹감으로 바뀌어 버렸다. 2.3일 고용지표(NFP)가 예상치를 2배 이상 뛰어넘는 호조를 보임에 따라 시장은 충격을 받는다. 이후 2.14일 발표된 CPI(전년동월대비)도 예상치를 상회한 오름세를 보임에 따라 디스인플레이션 가능성에는 물음표가 늘었다. 연준 인사들도 노동시장 등 경제가 예상보다 훨씬 견조하고 인플레이션 완화도 기대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어 더 높은 금리를 더 길게 가져가야 한다며(higher for longer) 매의 부리를 쪼아대기 시작했다.  
 
지난 2월 24일에는 연준이 가장 중시하는 근원 PCE 물가상승률도 시장예상을 상회하는 오름세를 보임에 따라 시장의 유포리아는 물러나고 인플레이션 재가속, 연준 금리인상 장기화 우려가 대세가 되었다.  
 
2월중 발표된 뜨거운 경제지표로 노파심 가득한 연준과 참을성 없는 시장 간 줄다리기는 일단락된 것 같다. 그러나 앞으로 상황이 어찌 전개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연준을 비롯한 주요 중앙은행들은 DSGE(동태확률일반균형)와 같은 정교한 모형을 통해 미래와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을 관측하고 예측한다.  
 
그러나 경제의 움직임은 확률로 표현될 뿐이고 모형이 제시하는 전망도 미래는 이렇게 될 것이라는 규범적 함의에 그칠 수 있다. 더 두고 봐야겠지만, 팬데믹 이후 탈세계화, 탈분업화 확대로 물가의 끈끈함(stickiness, 경직성)도 올라간 것 같고, 통화정책 파급시차(lags)도 길어지는 등 기존 경험칙이 안 통하는 구조적 변화도 감지된다. 그래서 연준 등은 포워드 가이던스 비중을 줄이고 그때그때 나오는 데이터를 보고 정책을 결정하겠다는 Data Dependency의 태도를 강조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기술 발달로 시장은 갈수록 참을성이 없어지고 기대가 앞서가니 앞날을 전망하고 길잡이가 되어야 하는 정책당국으로서는 총체적 난국이다. 질문에 바로 답을 내놓는 ChatGPT 등 AI 챗봇이 인기를 끌면서 경제나 투자에 대한 전망도 AI에게 물어보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그런데 AI도 과거 데이터에 기반한 학습 내용을 답으로 제시할 뿐이고, 답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그래서 더 빨리 답할 수가 있다). 불확실한 상황이 길어지면서 극단적 내러티브가 힘을 얻고 기대도 이리저리 쏠리는 것 같다.
 
이런 때일수록 정책당국, 시장 모두 차분하게 시간을 조금 더 두고 변화하는 추세를 보려고 노력하면 좋겠다. 요즘 장년층이 애니메이션 영화로 다시 나온 학창 시절 ‘슬램덩크’에 열광하고 있다. 등장인물 중 치열한 농구코트 안에서도 코트 밖을 보며 승패를 떠나 경기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여유’를 가진, ‘윤대협’의 명대사를 소개하며 끝낼까 한다.  
 
“아직 당황할만한 시간이 아니야.”

박주하 / 뉴욕사무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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