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하노이 결렬로 비핵화 걷어찼다
[기획] ‘북핵, 그 결정적 순간’ (2)
북에 핵은 미 공격 억제수단, 관계개선·기술 증강 투트랙
KEDO·제네바 합의 무산은 북핵 억제 최고기회 놓친 것
트럼프와 하노이 정상회담서 김정은 굴욕느껴 핵개발 지속
미주중앙일보는 세계적인 핵 무기 권위자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 인터뷰의 하편을 27일자 2면의 상편에 이어 게재합니다. 상편에선 한국의 독자 핵무장론에 대한 견해를 피력했고, 이번엔 과거 북한을 방문했던 경험을 들려줍니다. 〈편집자 주〉
“공무가 아닌 민간인 초대 방문이었다. 북한은 7년 동안 지속적으로 나를 초대해 영변의 핵심시설까지 보여줬다.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2004년 북한 첫 방문 마지막 일정이 끝난 날인 금요일 저녁 보자고 하더니 영변 핵시설에 대한 내 결론을 듣고 싶다고 했다. 나는 ‘지금 말하는 내용이 정확히 미국에 돌아가서 전달할 내용’이라고 말한 뒤 설명했고, 실제 그대로 미국에 돌아와 의회에 공개했다. 이듬해 북한에 갔더니 있는 그대로 의회에 증언했다며 나를 존중한다고 말하더라. 이후에 북쪽 기술자들과의 신뢰 관계가 생겼다. 그들이 원하는 것만 묘사하거나, 과장 또는 축소하지 않고 본 것들을 그대로 전달했다. 당시 방문에는 스탠퍼드대 존 루이스 교수가 동행했다. 그는 북한을 여덟 번 방문한 경험을 갖고 있었으며, 중국에서 핵과 관련된 동일한 일을 했기 때문에 정보는 더욱 정확했다고 본다. 당시 2002년 북의 농축 우라늄 개발이 알려지고 NPT(핵확산 금지조약) 탈퇴로 이어지면서 사실상 KEDO가 붕괴하는 등 악화일로로 치닫던 상황이었다.”
-김계관 부상 등 북한의 고위 관리자들과 과학자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이 말하는 핵무기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북한 사람들은 매우 훈련을 잘 받은 사람들이다. 일반적이고 공식적인 대답은 ‘아직 존재하는 미국의 적대적인 대북 정책’이라고 말한다. 더 이야기를 깊게 하다 보면 그들은 핵무기가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는 억제력이 있다고 보고, 그를 위해 핵을 개발하고 실험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아직 70년 전 한국전쟁의 트라우마 때문인가.
“그렇다. 동시에 리비아와 이라크를 보더라도 미국은 충분히 북한에 그런 적대적인 행동을 할 수 있으리라 본 것이다. 적어도 그들은 세계 정세와 한반도 정세로 볼 때 그들이 개발한 핵이 향후 있을 수도 있는 충돌이나 공격에 대한 억제력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북한을 지켜봐 온 과학자의 입장에서 그게 논리적이라고 보는가.
“전적으로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전쟁을 겪었고 실제 아직도 ‘전쟁 중’이기 때문에 그들의 논리는 ‘말이 된다’고 본다. 반면 북한 관리들과 외교관들은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이건 그들의 공식적인 외교 방침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거다. 북한의 논리를 더 이해하려면 김일성이 1990년 전후에 미국과의 화해 정책을 통해 관계를 정상화하고 외교관계를 맺으려고 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북은 최근 30년 동안 중국이나 러시아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를 청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해왔다. 하지만 이런 외교적 접근과 동시에 군사기술적으로는 핵개발을 멈추지 않는 소위 이중 전략(dual strategy)을 구사했다. 외교와 핵개발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인데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관계 개선에 나서면서도 보이지 않게 핵기술을 증강해온 것이다. 그래서 지난 30년 동안 미국은 북핵과 관련해 중요한 판단을 해야 하는 시점이 여럿 있었지만, 국내외 정치적 요소에 치중해 기술적인 정보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결정을 내렸다.”
-그렇다면 제네바 합의에 따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활동 시기에도 북한이 계속 핵개발을 했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북은 KEDO 기간 중에 영변에서 플루토늄 생산을 중단해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우라늄 쪽으로는 연구 개발을 지속했다. 미사일 디자인과 컴퓨터 프로그램 등의 개발을 계속 진행했다. 제네바 합의가 깨진 직후 북한의 우라늄과 플루토늄 생산은 매우 활발해졌다.”
-그럼 제네바 합의를 깬 미국의 결정은 결국 옳은 판단이었나.
“그렇지 않다. 로버트 갈루치 등 제네바 합의의 주역들은 KEDO를 통해 북핵 개발을 억제하고 북과 더 많은 교류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결국 KEDO가 없어지지 않고 유지됐다면 북한의 에너지 상황은 크게 개선됐을 것이며, 북한이 농축 우라늄에 눈길을 줄 명분이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KEDO와 제네바 합의가 무산 된 것은 미국 입장에서는 가장 좋은 기회를 놓친 순간이었다. 미국의 뼈아픈 실수다.”
-그런 실수에는 잘못된 정보가 문제였나, 아니면 올바른 정보를 갖고서도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것인가.
“농축 우라늄 등에 대한 정보는 모두 제대로 된 것이었다. 클린턴에서 부시로 정권이 인계되면서도 북한 정보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결정이 정권의 정치적 동기에서 나온 것이었다. 부시 행정부의 매파들은 근본적으로 북한과의 거래나 협상을 용인하지 않았다. 북한은 존재하지 않아야 할 국가로 낙인 찍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시 정권에서 존 볼튼 당시 부장관은 자신의 책에서도 북의 우라늄 농축이 제네바 합의를 깨트리는 ‘망치’ 역할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나는 미국의 원자력 연구소 로스 알라모스(뉴맥시코) 책임자로 일했고 2004년부터 북한을 비공식 방문해 북한 관계자들과 토론했다. 이후 미국 정부는 필요한 모든 정보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책임있는 결정과 선택의 부족이 원인이었다.”
-지난 1월 출간한 저서 ‘힌지 포인트(Hinge Points)’를 통해 북핵에 대한 결정적 순간들에 대해 언급했다. 가장 결정적 고비가 언제였나.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난 하노이 회담은 양측 모두가 망친 결정적 기회였다. 나는 북한에 동정심을 갖거나, 미국이 항상 옳다는 입장을 갖고 있지 않다.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북한은 2018년과 2019년 정상회담 이후 좀더 구체적인 비핵화 프로세스가 진행될 수 있도록 양측이 머리를 맞대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스티브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로 회담에 임했으며, 갑자기 등장한 존 볼튼 안보보좌관은 회담 전에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협약에도 응하지 말도록 조언을 해왔다.”
-그렇다면 당시 트럼프의 대응은 옳았나.
“전혀 아니다. 물론 협약을 한다고 그 다음달에 비핵화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핵화 프로세스의 첫 발을 딛을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린 것이다. 김정은은 굴욕적인 기분으로 북으로 돌아갔으며 이후 핵무기와 미사일 시험은 지속됐다. 전세계가 2주 전에 본 평양의 열병식이 바로 하노이 정상회담 실패의 결과다. 하노이는 북핵 역사의 가장 큰 결정적 순간이었지만 결실없이 막을 내린 것이다. 이후 김정은은 모든 외교채널을 닫고 무기 개발에만 열중했다. 그가 아버지나 할아버지처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원하는지 더이상 알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트럼프나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미국의 이익을 지켰다고 평가한다.
“동의할 수 없다. 부시, 오바마, 트럼프 모두 미국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실수를 거듭했다. 기술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위해성을 분석하지 못한 상태에서 결정을 했다. 부시 정권을 예로 들어 보자. 당시 제네바 합의를 파기할 경우 우라늄 폭탄은 10년이 아닌 6개월 후에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파기 결정은 후폭풍에 대한 분석이 기반이 되어야 하는데 정치적 동기를 갖고 내려졌다. 트럼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변시설을 닫는 것으로 핵 프로그램을 없애지는 못하겠지만 최대한 늦출 수 있는 방법이었다.”
-2004년 이후 7년 동안 북한을 방문했다. 피부로 느껴지는 그들의 경제 수준 변화는.
“경제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단언할 수 없지만 이전의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7년 동안 경제 수준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가난한 나라이고 많은 자원을 핵무기 개발에 쓰고 있었던 점은 안타깝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고 평화를 담보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나.
“북한의 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비핵화에만 집중하는 것은 오류를 부를 수 있다. 북한의 우려와 방향을 잘 이해해야 하고 남북한이 협력해야만 평화를 담보할 수 있다. 비핵화는 평화로 가는 길에 중요한 조건이지만 전부는 아니라고 본다. 핵은 그 힘이 크기 때문에 좋은 일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해가 될 경우에는 최악의 것이 될 수 있다. 예전부터 주장해왔듯이 그들이 가진 핵무기를 민간 차원에서 에너지로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핵심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국제 핵무기 전문가로서 최근 25년 동안 러시아, 중국, 파키스탄 등 핵 보유국을 다수 방문했다. 2004~2010년 북한을 매년 방문해 영변 핵 시설 등을 둘러봤다.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 금속공학 박사. 30년 간 미 로스 알라모스 원자력 연구소장을 지냈고 현재는 스탠포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인성 기자 ichoi@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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