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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말썽꾸러기들

“세탁기 하나 새로 장만하지.” 남편이 말했다.
 
“새로 장만하려고 기다리는데 낡은 세탁기가 계속 돌아가는 것을 어떻게 버려요. 고장 나기를 기다리니까 나를 놀리듯 죽었나 하면 다시 살아나고. 잘 돌아가네 하면 죽는시늉을 하네!”
 
세탁기가 우당탕, 꽈당탕 들썩인다. 몸통을 앞으로 내밀며 빨래를 끝마치려고 난리 친다. 이렇게 폭발할 듯 끝맺음을 할 때는 탈수를 잘하고 있다는 증거다. 어느 날은 소리 없이 빨래한다. 빨래에 물기가 흥건히 남아있다. 나는 세탁기 아랫부분에 있는 작은 문을 열고 물을 뺀다. “다시 힘내서 잘해 봐라”고 중얼거리며 세탁기를 두드리고 다시 돌린다. 내 위로에 보답하려는 듯 물기 쪽 빠지게 빨래를 잘해 놓는다. 나는 누가 이기나 해보자며 덜거덕거리는 세탁기와 오랜 세월 싸우는 중이다.
 
너무 자주 빨래하면 물기 흥건한 빨래로 마감한다. 세탁기 문을 열어 놓고 일주일에 두 번만 돌리면 물기 쫙 빠지게 야무지게 해 놓는다. 말썽 피우는 이 세탁기를 내다 버리고 새로 장만하려다가도 빨래를 잘해보겠다며 우당탕 탕탕 난리 치는 세탁기를 보면 어릴 적 큰아들 생각이 나서  버릴 수가 없다.
 


“꽈당, 꽈다당.” 큰아이의 엉덩방아 찧는 소리다. 가만히 있으라고 아이의 옷자락을 잡아끌어 앉히지만, 잠깐 조용하던 아이는 어느새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 엉덩방아와 머리 찧는 소리를 내고 돌아다닌다. 울지도 않고 끄떡없다는 표정으로 장난칠 것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아이를 보면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애가 왜 이리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난리 치냐. 애 교육을 어떻게 한 거야.”
 
작은아버지와 남자 동생 등 주위 사람들에게 나는 쓴소리를 많이 들으며 아이를 키웠다.  
 
“애가 기운이 넘쳐서 그런 거다. 다 자라면 저런 아이가 오히려 얌전하다. 너희 시아버지도 어렸을 때는 무척 장난이 심했다는구나. 지금은 얼마나 점잖으시냐.”
 
시가 쪽을 닮은 아이가 대견하다는 듯 시어머니는 괜찮다며 나를 위로했다.  
 
학교에 가서도 난리 치며 선생님들을 힘들게 할 것이 걱정돼서 수영을 가르쳤다. 물에서 기운을 빼려는 속셈에서다. 아이는 매일 수영을 하겠다고 수영장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며 휘젓고 다녔다. 수영장에서 기운을 빼서인지 학교에서는 얌전했다. 이제 어른이 된 아이는 시어머니 말씀대로 점잖다.  
 
세탁기가 우당탕 탕탕거릴 때는 아이처럼 기운이 넘쳐나 빨래를 잘하려고 노력 중이다. 조용할 때는 나의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증거다. 나는 세탁기를 청소하며 달래준다. 내가 어루만져 주면 다시 힘이 솟는지 들썩거리며 신나게 빨래하는 세탁기는 어릴 적 큰아이와 닮았다.  
 
기운이 넘쳐 난리 치면 기운을 빼게 수영 물에 넣었다. 기운이 없어 처지면 살살 달래고 타일러 기운을 북돋우며 아이를 키우듯 세탁기와 나는 함께 늙어간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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