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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꼴찌, 그 평화로운 맞장뜨기

이기희

이기희

나는 꼴찌가 좋다. 뒤로 밀릴 걱정 없다. 치고 올라 올 사람 없고 오로지 올라 갈 일만 남는다. 중간이면 위로 올라갈 건지 아래로 떨어질 건지 노심초사 한다. 꼭대기에 도달하려고 악쓰는 건 젊을 때 하는 짓이다. 나이 들면 느긋하고 지혜롭게 살 생각을 해야 만사가 평온해진다.
 
일등은 정말이지 골 때리는 고통이다. 평생 일등이란 타이틀을 고수하며 살기란 쉽지 않다. 꼭대기에 서면 언제 추락할 지 모르는 위기와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빠진다. 인생의 행복은 쟁취했을 때보다 한 계단씩 밟아 올라가는데 있다.
 
갑자기 ‘꼴찌 행복론’ 주장은 왜? 내가 제일 싫어하고, 안하고, 못하는 것이 운동이다. 작심 일주일 넘긴 사례가 없다. 그 동안 비상식적이고 말도 안 되는 핑계로 ‘했다. 안 했다’ 몸부림치며 버텨왔는데 드디어 건강에 자신 있다고 까불고 큰 소리치던 젊은 시절이 흘러갔다는 사실! ‘내 나이가 어때서’가 아니라 ‘내 나이에 운동 안 하면 골로 간다’는 의사의 주의 통보를 받았다.  
 
일주일에 세 번, 한 시간 정도 땀이 살짝 날 정도로 규칙적인 운동 안 하면 일찍 죽는다고 경고한다. 100세 시대에 일찍 죽는다는 말에 화들짝. 겉으로 강한 체 하는 사람이 속으론 더 떤다. 20년째 회비만 바치고 콧배기도 안 들이밀던 헬스스파에 등장했다.  
 
기계 운동은 겁 나서 패스, 줌바클레스에 등록했는데 완전 꼴등이다. 희망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선생만큼 멋지게 히프 살랑살랑 흔들 날을 기대한다. ‘꼴찌’는 더 내려갈 곳이 없으므로 진보만 존재하고 퇴보는 없다는 지론이다.
 
1667년 시작된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 주관 살롱전은 프랑스 및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미술 경연장인 동시에 신인 화가들의 등용문 역할을 했다. 살롱전에서 좋은 평을 받은 화가들은 국가 미술관에서 작품이 구입되고, 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어 화가들은 살롱전의 성공에 목을 맨다. 화가로서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고, 명성을 얻으면 부귀영화가 따라왔다.
 
청춘은 모반을 꿈꾼다. 1874년 미술사를 뒤엎는 사건이 발생한다. 젊은 화가들 중심으로 기존의 판을 엎고 새로운 판을 깔아야 한다는 욕구가 넘쳐났다.
 
살롱전에 탈락한 젊은 화가들 중심으로 역사적인 인상파전시회가 열리게 된다.
 
에두아르 마네(Eduard Manet)를 중심으로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카밀 피사로(Camille Pissarro) 에드가 드가(Edgar Degas)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 폴 세잔(Paul Cezanne) 등의 화가들이 참여했다.  
 
자비로 돈을 모아 개관시간을 늘려가며 전시를 했지만 전시회는 폭망하고 언론들의 혹평을 받는다. 젊고 패기 있는, 미술사의 역사를 바꾼 화가들의 ‘패자 부활전’은 참가한 화가들이 일인당 184프랑의 빚을 떠 안은 체 처참하게 막을 내린다.
 
꼴찌는 거꾸로 하면 일등이다. 순서는 언제든지 바뀐다. 순서에 연연하지 않으면 편하게 살 수 있다. 자기 삶에 확신을 가지고 버틸 수 있는 사람, 생의 중요한 목표가 있는 사람, 흔들리지 않고 올인 하는 사람. 용감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은 등수를 넘보지 않는다. 인생에는 순서가 없다. 맞장뜨기가 있을 뿐이다.
 
‘꽃들을 모조리 잘라 버릴 수는 있지만 그런다고 한들 절대 봄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말을 인용한다. 봄의 주인은 봄을 믿는 사람이다. 꽃을 잘라도 봄이 오듯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의 봄은 늘 새로운 꽃이 핀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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