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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그 아버지에 그 아들

“핸들 두 손으로 꼭 붙잡고, 차선 바꿀 때는 너무 빨리 들어가지 말고. 그렇지, 그렇게 천천히 들어가면 돼.” 초보운전자인 아들이 모는 차를 타니 잔소리가 늘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운전면허증을 땄음에도 운전을 꺼리는 아들은 대학을 졸업했지만, 여전히 운전이 서툴다.  
 
몇 년 전, 운전 연습을 위해 차를 몰고 나간 첫날, 길모퉁이를 급하게 돌다가 차가 인도로 들어가는 바람에 타이어를 터뜨린 사고가 트라우마로 남아선지 아들은 웬만해선 운전대를 잡으려 들지 않는다.  대학 생활은 기숙사와 학교 앞에 살면서 친구 차도 얻어 타고, 우버나 리프트를 이용하면서 그럭저럭 버텼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나가야 하니 운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아들이 출근하는 첫날이었다. 출근길에 몇 번 같이 가주면 혼자서도 충분히 운전하고 다닐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길도 익히고 운전 연습도 시킬 겸 아들이 모는 차를 타고 나섰다. 아침 출근길의 프리웨이, 그것도 복잡하기로 소문난 405번 프리웨이는 소문대로 차가 많았다. 아들은 두 손으로 핸들을 꼭 붙잡고 앞만 보고 갔다. 프리웨이에 가득 들어선 차들을 따라 차선 변경도 못하고 가다 보니 평소 30분이면 갈 길이 1시간이나 걸렸다.  
 
퇴근 시간에 맞춰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하고는 회사 건물 안으로 사라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자니 마음이 뭉클했다. 마냥 어린 줄만 알았는데 어느새 어른이 되어 스스로 삶의 자리를 찾는 모습이 대견하기만 했다.
 
이제 아들이 운전하고 온 차를 내가 몰 차례다. 차에 올라 핸들을 잡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핸들이 축축했다. 핸들을 이리저리 만지는데 천으로 된 핸들 커버 양쪽에서 흥건한 물기가 느껴졌다. 핸들의 젖은 부분은 아들이 두 손으로 꼭 붙잡고 있었던 바로 그 부분이었다. 얼마나 긴장하며 핸들을 잡았길래 이처럼 땀범벅이 되었을까? 안쓰러운 마음으로 아들의 땀이 밴 핸들을 이리저리 만지는데, 자동차 핸들에서 느껴지는 촉촉함이 오래전 기억을 불러냈다.  
 
그 기억은 내가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운전을 배울 때였다. 먼저 미국에 자리 잡은 친구가 운전을 가르쳐 준다고 하기에 따라나섰다. 처음 운전하는 것 치고는 잘한다는 친구의 격려를 곧이곧대로 믿고 그가 가자는 대로 가다 보니 꾸불꾸불한 산길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길은 운전을 잘하는 사람도 조심스럽게 다녀야 하는 험한 길이었다. 두 손으로 핸들을 꽉 붙잡고 한 시간 정도 산길을 돌아서 내려왔다. 그렇게 운전을 마치고 차에서 내리자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털이 한 움큼씩 묻어 나왔다. 친구의 차에는 그 당시 유행하던 양털로 된 핸들 커버가 씌어 있었고, 그 핸들을 얼마나 꼭 붙잡고 있었던지 핸들 커버의 양털을 뽑아 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이 있나 보다. 그렇게 긴장하며 운전을 시작한 지도 30년이 넘었다. 그동안 별 사고 없이 운전하고 다닐 수 있어서 감사하다. 똑같은 긴장감 속에서 운전을 시작하는 아들도 그 떨림을 평생 마음속에 간직하며 안전하게 운전하고 다니기를 바란다. 운전만이 아니라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아들이 설렘과 긴장으로 시작하던 겸허한 마음을 잊지 말고 신실하게 살아가게 되기를 기도한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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