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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신년 산행

계속되는 겨울비가 마음마저 우중충하게 다스릴 무렵, 다행히 남편의 고교 동창 산우회 산행이 있었다. 비가 많이 왔으니 산에는 눈이 쌓였겠다는 짐작에 따라나섰다. 마침 짧은 산행 후, 주차장에서 피크닉도 있다고 했다. 산행은 하기 싫은 종목이지만, 피크닉이라면 신난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내 걷기 실력은 완전 안면 몰수 상태다. 맨 꼴찌도 모자라 고관절에 통증까지 찾아와, 뒤에서 보호 차원으로 봉사하는 남편의 산행을 완전히 마비시키고 있다. 내가 아니더라도 평상시 남편의 산행 방식은 산행하는 모든 사람을 아우르며 안전제일을 최우선으로 신경 쓰는 산꾼이다.
 
동창 모임인 산우회는 취미로 묶인 경우라서 전문성이 희박하다. 날씨 좋고 경치 좋고 제법 마음 맞아 별 하자 없이 함께 걷고, 뒤풀이까지 치르다 보면 쉽게 산행을 마무리 짓는다. 하지만 남편의 경우는 자신이 추구하는 원정 산행을 자주 경험하면서 가까운 당일치기 산행이라도 함부로 임하지 않는다.
 
게다가 구성원들이 전문 산악이 아닌 탓에 남편은 항상 책임감으로 안전 문제를 가장 염두에 두고 있다. 곁에서 지켜보는 아내의 입장에선 남편이 괜히 에너지를 소비하는 모습이 못마땅해서 핀잔을 주곤 한다. 제대로 산꾼들의 위계질서와 마음가짐을 배운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10년 전, 암벽을 배우며 등산학교에 입학해서 교육받던 때를 떠올려 본다. 선배를 대하는 모든 산꾼의 예의 바른 말씨나 행동거지가 항상 안정감을 느끼게 했다. 초보자로 학생의 입장인 내게도 대선배의 와이프라는 이유로 극진한 대우를 받았던 기억이다. 상대는 대자연이고 인간이 결코 이길 수 없으니 안전, 안전, 또 안전을 위해서 리더의 통솔에 따라야 한다. 혹여 안전에 위협이 되는 경우가 생긴다면 불호령에 무릎을 꿇릴 체벌도 생긴다.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거나 자만심에 개인행동을 하고 싶으면 무리에서 빠져야 한다. 자존심 상할 응징이 뒤따를 것이니 탈퇴함이 마땅하다.
 
남가주에 몰아친 기후 변화에 요즘 가까운 산들도 눈이 제법 쌓인 아름다운 설산으로 변해 풍성한 감성을 선물로 준다. 메마른 우리 가슴에 이유 모를 설렘도 찾아 왔다.  
 
어려운 시기를 견디고 여기까지 함께 걸어 온 곁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자. 새삼 소중하단 느낌이 퍼진다. 아슬아슬 안전권에서 자칫 한 발 헛디디는 사람 없기를 기대한다. 이미 얼굴 익힌 모습들과 낯설어 어색한 미소가 불편한 새로운 이웃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친숙하게 다가가 보드라운 실크톤의 털을 쓰담 쓰담 할 수 있는 토끼의 해를 맞이했으니 이참에 우리 마음도 좀 부드럽게 가져보자. 웬만하면 나보다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 나를 맡겨 보기도 하자. 그것이 안전한 길로 가는 지름길임을 인정하면서 흰 눈으로 숨어버린 익숙한 길을 찾아 안전하게 산행을 이끄는 남편의 통솔력에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노기제 / 통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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