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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응답하라 1992

그날따라, 솔직히 약간 고의성이 없다곤 할 수 없지만, 낮에 미용실까지 다녀왔었다. 삼십년 만에 만나는 나이 오십 제자들과의 만남에, 적어도 팍 삭은 모습으로 나갈 수는 없다는 61세 내 자존심의 최후 몸부림? 그리하여 머리는 와인색으로 염색하고, 노란 꽃무늬 원피스에 평소답지 않게 굽 높은 노란 샌들까지 신었댔다. 이렇게 하고 나풀나풀, 팔랑팔랑 식당을 들어섰을 때, 완전 충격에 빠지시던 이분들의 표정이란. 후에 이들은 말했었다. 삼십 년 전 쌤이니, 지금은 비틀비틀 지팡이 내지는 휠체어에 의지한 모습을 연상했었더라고.  
 
일 년 반 전 여름 이렇게 시작된 나의 중년 제자들과의 만남 이름은, 응답하라 1992. 포트리 고등학교 초창기에 가르치던 아이들, 오십 세가 되었어도 내게는 아이같이만 느껴지는 이 든든한 제자들의 졸업 연도가 대부분 1992년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응답하라 1992 제자들과 만나면서, 오년 전 은퇴 시부터 꾸던 나의  한 꿈이 힘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나와 공부했던 한국 아이들을 선후배로 연결해주는 일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가장 힘든 시기에 낯설기만 한 미국 고등학교에 입학해, 새로운 언어로 어려운 고등학교 과정을 배우느라 참으로 고생했던 아이들이었다. 보이지 않는 편견과 새로운 학교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때로는 내 앞에서 눈물도 보였었던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과정을 지나 미국 사회에서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서로 의지하고 격려해주는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들어주고 싶은 이 꿈이, 그동안 엄청나게 내 안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2017년 12월, 국내외  졸업생들의 영상 메시지와 사진 모음으로 정성껏 나를 은퇴시켜주던 재학생들과 꽃과 케이크를 들고 학교를 찾아온 최근 졸업생들하고, 학교 앞 맥도날드로, 중국집으로 돌아다니던 그 아쉬운 오후의 끝자락에 차를 타고 파킹장을 빠져나올 때, 모두 모여 서서 미스킴 빠이 하며 손을 흔들어주던 이 예쁜 어린 제자들도 이제는 다 성인이 되었다.  
 


이번에 나의 책이 출간되면서, ‘응답하라 1992’ 제자들 중심으로 북 사인회를 겸한 동창 모임이 시작되었다. 졸지에 준비위원이 되어버린 응답하라 1992들은 지혜롭게 회비를 정했다. 90년대 졸업생은 50불, 2000년대 졸업생은 40불, 2010년대 졸업생들은 30불, 그리고 막내인 2020년대 졸업생은 20불로. 제자 중 하나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모임을 한 탓에, 맛있는 식사를 했는데도 회비는 남았고, 아이들은 이 돈으로 내가 지원하는 단체인 러브더월드의 미혼모·미혼부들에게 책을 보내주었다.  
 
30년이라는 시간을 어우르는 이들의 모임을 바라보며, 마음속에 벅찬 감사의 물결이 따뜻하게 일렁거렸다. 이런 모임을 기뻐하고 찾아온 이 아이들이 너무 소중해서 가슴이 뻐근할 지경이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사막 같은 삶에서도 서로에게 오아시스가 되어주고, 두 번째 산을 만나도 손을 잡아줄 수 있는 그런 공동체를 이들이 함께 만들어갈 수 있기만을 기도했다. 우리는 결코 혼자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린 제자들이 허락을 받으러 온다. 쌤, 우리 다 21세 넘었는데요? 신나게 소맥을 제조하는 아이들을 남겨두고, 응답하라 1992들과 나는 조용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카페가 문 닫는 밤 11시까지, 나이에 안 맞게 핫 초콜릿들을 좌악 시켜놓고, 요즘 무슨 드라마가 재미있다는 추천부터, 이런저런 수다를 함께 나누며 이 중년 제자들과의 첫 동창회 날 밤이 깊어만 갔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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