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책씻이 선물
영화 ‘영웅’ 티켓을 끊었다. 내가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서다. 나는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장려하기 위해 무료로 글짓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3·1절 독립운동을 소재로 내준 숙제가 시작이었다. 몇 학생은 아주 글솜씨가 좋아 몇 군데 수정하게 했더니 외부 공모전에서 상도 타게 되었다. 가능성을 보게 된 나는 김구재단에서 제공하는 김구 선생에 대한 동화책을 갖고 특별반을 구성했다. 한국에 있는 학생이야 동화책이었으니 이해가 쉽겠지만 영어가 모국어인 학생들에게 그 동화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동학 농민운동과 명성황후 시해 사건, 그리고 안두희의 저격까지 읽는 거로는 불충분했다.
한글자판은 물론이고, 한국어 전혀 하지 못하는 학생도 있었다. 한국어를 잘 못 하는 학생들에게는 우선 영어로 쓰게 하고 한글로 전환하는 방법을 택했다. 한국어는 하는데 자판이 서툰 아이들은 마이크로 읽게 했다. 진화하는 컴퓨터의 기술은 아주 쓸 만했다. 구글 번역기도 처음에는 한글 번역이 엉성하더니 요즘은 꽤 정교하다. 코로나로 인해 사용하게 된 줌 강의도 기술 문명이 안겨준 혜택이었다. 일주일에 30분씩 진행된다고 해도 3~4개월을 이어나가는 건 쉽지 않다. 내가 선물을 준비한 이유다.
한국의 전통문화 중에 ‘책씻이’라는 풍습이 있다. ‘책거리’라고 불리던 그 풍속은 학생이 책 한 권을 다 베끼거나 읽기를 끝내면 책을 다 뗀 친구가 스승과 동료에게 선물을 주는 아름다운 문화다. 그것에 착안해서 나는 거꾸로 아이들에게 글을 한 편 완성하면 선물을 마련했다. 처음에는 피자 쿠폰을 제공했다. 색펜을 사주기도 하고 세상이 빛이 되라는 의미로 책상전등을 사주기도 했다. “한글로 글 한 번 써 보지 않을래?” 넌지시 건네면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하는 학생이 대부분이다. 그런 아이들을 달래서 컴퓨터 화면으로 끌어냈다.
아이들의 쓰기 능력이 천차만별이라 한꺼번에 많은 아이를 대상으로 진행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10명 내외로 제한하고 있다. 멋모르고 시작한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며 한 편씩 완성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뜻있는 부모님의 후원도 생겨났다. 보람을 느낀다.
책거리 선물을 고르는 것도 고민거리다. 마침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담은 영화 ‘영웅’이 상영하기에 지체 없이 영화표를 준비했다.
‘안중근’이라는 인물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는 아이들이 손가락을 자르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 독립운동의 결의를 보았으리라. 영화 ‘디어 헌터’를 보고 베트남전에 관심을 갖게 된 과거의 나처럼.
서른살 남짓한 청년, 그것도 처자식이 있는 가장이었음에도 동아시아의 평화를 걱정하는 결연한 모습이 그들의 삶에도 투영되길 바란다.
권소희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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