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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고난이 복이라던데

우리 아들 Jay가 대학을 마치고 다행히 뉴욕에 원하던 직장을 구해서 열심히 일 한지 몇 해인가 지났을 때 일이다. 그때 Jay는 그의 직장에 있는 상관의 권유를 받아들여서 그 상관과 함께 다른 직장으로 일자리를 옮기고, 따라서 Jay는 새 직장으로부터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연봉을 받게 된 일이 있었다. 우리 모든 식구가 기뻐한 것은 우선 Jay가 자기 상관에게 그렇게 성실하게 보였다는 것 그리고 새 직장에서 예상치 않은 보너스를 받은 것 모두가 우리를 기쁘게 한 것이다.  
 
그해가 2001년 바로 미국에 치명적인 9·11 테러가 일어나던 때였고 그 사건이 있고 난 뒤 각 회사마다 사태 조정이라 명칭 아래 서둘러 우선 가장 근래에 입사한 사람 순서대로 감원을 시작했다. 당연히 불과 6개월 전에 입사한 Jay가 감원 대상의 한 사람이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Jay는 그동안 주머니가 넉넉해져서 여유 있게 살던 중에 하루아침에 하늘이 무너진, 아니면 밑 빠진 독이 된 심정으로 당장 생활비와 아파트 월세를 준비하러 길로 나서야 했다. 부모가 도와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집으로 돌아와 새 직장을 찾아보라고 권면하였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Jay가 새로운 직장을 찾기까지 일 년 반이란 긴 세월을 제대로 잠잘 틈도 없이 열심히 몸으로 버티고 믿음으로 어려움을 견디며 지내다가 마침내 새로이 Bank of America에 입사하게 되고 안정된 직장인의 삶을 찾게 되었다. 그동안 뉴욕에서 그의 삶은 ‘고난’이란 말의 뜻조차도 익히 알지 못하고 성장한 Jay에게 턱없이 크고 고통스러운 경험이 되었지만, 꼭 그렇게만 말할 수 없게 된 역설적인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마침내 태풍과 같은 Jay의 고난이 지나고 얼마 후 나는 그에게 그동안을 어떻게 견뎌왔는지를 좀 더 자세히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그동안 세 개의 임시 직장(Part time job)을 가지고 살았는데 하나는 별로 신통치 못한 판매업이고 하나는 뉴욕 경제 신문사에서 편집을 도운 일이고 다음은 고급 바에서 술 만들어주는 바텐더(Bartender)로 일했다며 그는 바텐더 면허증을 따기 위해서 3개월간 따로 교육도 받았다고 했다. 이런 사정을 들으면서 나 자신은 어릴 때 술은 아예 입에 대지도 말라는 할머니의 교훈을 받아온 터라 맘 속으로 크게 염려되긴 했지만,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Jay가 술을 손님의 취향을 따라 섞어서 만들어 주는 동안 그의 앞에 앉아있는 손님이 술김에 토해 내는 그들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의 아픔과 분노와 눈물과 처절함을 묵묵히 들으면서 때로는 그와 함께 아파하는 상담사로 아니면 위로자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손님일수록 자리를 뜰 때 엄청나게 많은 팁을 Jay 손에 쥐여 주고 가곤 했다고 한다.
 
사실 Jay는 20대 중반까지는 세상 물정이라곤 하나도 모르면서 곱게만 살다가 9·11 테러 사건을 만나게 되었고 그 사건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고난’이 무엇인지 체험하게 되었다. 또 그가 바텐더 노릇을 하면서 일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만나본 여러 명 각계각층 고객들이 친히 들려준 생생한 인생 체험담이 더는 Jay 나이 20대가 아니라 갑작스럽게 40대 중반에 성숙하고 유능한 중년 신사로 만들어 주었다.
 


“고난이 복이라던데”라는 말이 있는데 어떤 이들에게는 고난이 복일 뿐만이 아니라 인생의 큰 반전이 됨을 나는 믿는다.

황진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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