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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몽상] 포기하지 않는 마음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흥행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통념과 달리 관객 대부분이 성인이란 점부터 그렇다. 특히 30·40세대, 즉 성장기에 원작 만화 『슬램덩크』에 빠져들었던 세대가 흥행의 중심으로 꼽힌다. 이들 세대 이전에도 한국에서 일본 만화의 인기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원작과 극장판이 20여년 시차를 두고 인기를 재현하는 현상은 단연 새롭다.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장편 만화 『슬램덩크』가 한국에 처음 소개된 건 1990년대. 일본 연재와 비슷한 시기다. 할리우드 수퍼 히어로 영화의 원작 만화와 달리 한국과 원작자의 고국에서 거의 동시에 팬이 형성됐다. 게다가 한국팬들에게는 주인공들이 ‘강백호’ ‘채치수’ ‘서태웅’ 같은 이름으로 각인된 것도 재미있는 부분. 처음 소개될 때 한국 출판사가 붙인 이런 이름은 지금 국내 극장가에서 상영 중인 극장판 자막 등에도 그대로 쓰인다.
 
물론 ‘슬램덩크’의 극장판이 처음은 아니다. 일본에서 인기 만화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 ‘슬램덩크’도 만화 완간 전에 TV 시리즈와 더불어 극장판이 네 차례 나왔다. 당시는 영화·가요 등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본격화하기 이전이다. 개봉 가능성도 없었지만, 개봉했더라도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을지는 미지수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원작에 충실한 일본 영화의 특징이 한국 극장가에서는 큰 매력을 끌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봤기 때문이다.
 
새 극장판은 각색부터 대담하고 창의적이다. 주인공은 누구나 쉽게 떠올리는, 농구 초심자이면서도 농구 천재를 자처하는 강백호가 아니라 키 작은 가드 송태섭. 새 극장판은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을 맡았다. 감독은 송태섭의 어린 시절이란 새로운 이야기를 펼치는 한편 만화에서부터 유명한 경기를 극적인 연출로 교차해 보여준다. 덕분에 옛 기억을 환기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서사로도 흡입력을 더한다.
 
비록 30·40세대는 아니지만, 낯익은 북산고 농구부 5인조가 스크린에 한 명씩 등장하는 순간 내심 반가웠다. 오랜 친구들끼리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라, 이들은 정말로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여전히 고교생인 채로, 최강은 아닌 팀에서, 투지를 불태우며, 서로 부딪히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극장판에 거듭 나오는, 포기하는 순간 경기가 끝난다는 누군가의 대사는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 현실에서 이런 말을 듣는다면 상대가 꼰대처럼 느껴졌을 텐데, ‘슬램덩크’의 세계에서는 마음을 내주게 된다. 소년 시절에, 아니 청년 시절에 만났던 성장담이 중장년에게도 소년의 마음을 다시 불러낸 덕분 같다.

이후남 / 한국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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