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당] 침묵의 혀
한 번 꽃을 피워 내고는 침묵에 들었던 호접란잎사귀만 팔을 벌리고 있더니 꽃망울 벌어진다.
동안거에 든 비구니처럼 좀체 입이 열릴 것 같지 않아
가끔씩 옆구리를 건드리며 너의 봄은 언제냐 묻곤 했었는데
생의 분진을 받아먹으며 내부를 장전했을 꽃대
식솔들처럼 매달린 봉오리들 공손하다.
눈물로 먹는 밥처럼 쓰고도 떫은 시간이
치대며 물러져 저절로 그려낸 지도
꽃이 핀다는 것은 꽃의 내부가 확장되었다는,
침묵이 음을 얻어 춤사위가 되었다는 증거
표류 중이던 한 세계가 일어서려고
부드러운 혀로 깊어진다.
조성자 / 시인·뉴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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