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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과 만났다] 영웅의 어머니와 촌부인 나의 차이 -‘하얼빈’ 김훈

“한국 청년 안중근은 그 시대 전체의 대세를 이루었던 세계사적 규모의 폭력과 야만성에 홀로 맞서 있었다. 그의 대의는 동양 평화였고, 그가 확보한 물리력은 권총 한 자루였다. 그는 서른한 살의 청년이었다.”
 
간결하지만 숨을 멎게 하는 긴장감으로, 액자에 박제되어 있는 역사 속 인물들과 생생히 만나게 해주는 김훈 작가의 신작 소설 ‘하얼빈’을 읽었다. 전작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만큼 촘촘하고 빼곡한 서사는 아니었지만, 마지막 후기까지 책을 다 읽었을 때,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린 한 젊은이의 뒤에 남겨진, 세 아이와 부인 김아려의 비참했을 최후가 떠오르면서 어찌나 뜨거운 것이 코끝에 올라오든지, 써보려 했던 독후감을 한 자도 못 쓰고 도서관을 나왔다.
 
책은 1908년, 일본제국 메이지 천황이 대한제국 황태자, 이은을 접견하는, 우리 역사의 비애를 시작으로, 천황의 업을 받들어 한국 통감으로 부임한 이토 히로부미가 문명개화의 탈을 쓰고 약육강식의 전횡을 휘두르는 악행과 나라 곳곳에서 이에 항거하며 행해지던 조선인들의 자결, 의병 운동 등을 보여준다.  
 
그런 중에, 작은 학교를 열어 아이들을 가르치며 사냥하는 일을 소일거리 삼아 지내던 청년 안중근이 있었는데, ‘아름다운 솜씨다. 짐승을 쏘기에는 아깝구나’라던 그의 다듬어진 조준 솜씨를 칭찬하는 숙부 안태건의 한마디로, 청년 안중근의 운명이 감지된다. 마음먹는 대로 수많은 조선인을 학살한 원흉 이토를 저격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할 일이라는 믿음 아래, 거사는 말할 수 없이 무거운 사안이었으나 진행은 그 무엇보다도 가볍게 동지 우덕순과 치러버리는 안중근의 면모, 저격 후 체포, 수사와 재판, 판결 과정, 죽음 앞에서도 본명인 안응칠의 이름으로 자기 뜻을 기록으로 남겨 세상에 알리려 했던 한 청년의 마지막을 담담히 적어 내려간다.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써보는 것은 내 고단한 청춘의 소망이었다”는 작가의 인생 숙제와 같았던 이 책은, 실재하는 우리 역사의 아픈 속살과 가까이서 만날 기회를 준다.
 
우리는 결국, 지나온 역사의 발자취를 통해 배우고, 그 안에서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이어갈 것인데, 정신없이 펼쳐진 자잘한 일들 속의 걱정과 재미에 넋을 잃고 오늘을 살아가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한번 생각할 계기를 준다. 책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지금도 잊히지 않는 한 장면이 있다. 2011년 즈음, 뉴욕의 한가운데 링컨센터에서, 안중근을 주인공으로 한 한국 뮤지컬, ‘영웅’을 볼 때였다.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라고.  
 
사형에 처한 아들에게 보낸 안중근 어머니의 편지가 읽히던 장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면서도 동시에 어떻게 모성을 가진 어미가 저럴 수 있는가 하며 가슴에 멍울이 남던 장면이다.  
 
서울에서는 안중근 의사 순국 113주기인 지금, 10년 전의 그 뮤지컬이 영화화되어 절찬 상영 중이라고 한다. 모성과 애국심 사이에서 도저히 그럴 수는 없다고 서성댔던 나의 감정은, 그때와 지금, 어떻게 변해있을까… 내가 감히 서른 살 내 아들에게 대의를 위해 죽으라고 한마디나 할 수 있을까….

박영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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