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마사지 놀이
내 또래 (60대)의 독자들이라면 대부분 어려서 조부모의 등을 긁어드린 기억이 있을 것이다. 대나무를 깎아 만든 효자손도 있지만 어찌 손주 녀석의 따스한 손과 비교할 수 있으랴. 여름보다는 겨울, 낮보다는 밤에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아무개야, 등 좀 긁어다오” 하며 윗옷을 걷어 올리곤 했다.겨울이 되면 날씨가 건조해져 수분이 부족하고 노화 현상으로 피하지방이 줄어든 노인의 피부가 가려웠을 것이다. 등 긁기에는 깎은 지 며칠 지나 적당한 길이로 자란 손톱이 좋다. 길면 자칫 피부에 상처가 나고, 짧으면 등을 긁는 효과가 나지 않는다. 손주가 여럿이라도 가려운 곳을 골라 잘 긁는 놈이 있는가 하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놈도 있다. 등을 잘 긁고 나면 할머니는 장롱에 숨겨 두었던 사탕이나 과자를 슬쩍 집어 주기도 했을 것이다.
어느새 내 나이도 내게 등을 들이밀던 조부모의 나이가 되었다. 요즘은 영양도 좋고 보습제가 든 로션도 흔해 등이 가려운 일은 자주 생기지 않는다. 내게는 함께 사는 손주도 없고, 효자손도 없지만, 등이 가려워 어려움 겪는 일은 없다.
컴퓨터를 많이 쓰고 온종일 앉아 있다 보니 4~5kg 정도 된다는 머리를 받치고 있는 목이 뻐근하다. 언제부턴지 누군가 목과 등을 두드려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내는 어깨가 아파 가끔 내가 두드려 준다. 안마는 사람 손으로 하는 것이 제일 좋지만, 이게 꽤 힘이 드는 일이다. 마사지건을 하나 장만하기로 하고 아마존에 주문해 샀다. 사용해보니 좋기는 한데 손에 들고 목이나 등을 마사지하기는 좀 불편하다. 돌려보내고 새로 장만한 것이 긴 손잡이가 달린 핸디안마기다. 이건 들고 사용하기가 수월하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 하지 않았나. 사람은 필요하고 절실하면 뭔가를 생각해 내기 마련이다. 아내와 나는 마시지 놀이라는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아침에 눈을 떠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아내를 업어 놓고 마치 불도저가 땅을 고르듯이 이 핸디안마기로 목과 어깨에서 등, 허리까지 오르내리며 마사지를 해 준다. 그다음은 내 차례. 아내가 같은 방법으로 내 목과 등을 마사지해 준다.
이쯤에서 독자들은 “마사지 체어 하나 사면 될 것을 가지고 무슨 궁상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마사지만이 목적이라면 맞는 말이다. 마사지 체어는 혼자 하는 놀이고, 핸디안마기는 둘이 하는 놀이다. 놀이는 역시 둘이 해야 재미있지 않나.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한평생을 살며 늘 함께 손잡고 같은 방향으로 가면 좋겠지만 세월이 흐르며 잡았던 손도 놓고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듣는 음악도 다르고, 읽는 책도 다르고, 만나는 사람도 다르다. 취향이 다르니 함께 노는 일도 별로 없다. 주변에 부부가 다 골프를 치는 사람들을 보아도 부부가 함께 골프를 치기보다는 각자 자기 친구들과 치는 경우가 더 많다.
부부라도 공통의 관심사가 있어야 대화도 되고 함께 하는 시간도 늘어난다. 나이 든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건강이 아닌가. 마사지 놀이를 시작하며 서로의 몸 상태를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마사지를 받으면 기분이 업된다. 힘든 이야기도 이런 때 슬쩍 꺼내면 평소보다 수월히 넘어가지 않겠나. (마사지체어 사줄 형편이 안 되는 범부의 그럴듯한 핑계라고 보아도 좋다.)
고동운 / 가주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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