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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시간은 조금씩 흐른다

언제부턴가 새해를 맞는 설렘보다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이 커졌다. 올해도 그랬다. 주위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며 웃는다. 그래도 한 해를 그냥 보내기가 섭섭해 TV에 나오는 세계 곳곳의 새해맞이를 보았다.  
 
뉴욕의 타임스퀘어에서는 화려한 음악과 영상이 어우러진 새해맞이 행사가 열렸다.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에 모인 인파는 개선문 위로 축하 불꽃이 날아오르자 환호성을 터트렸다. 서울에서는 토끼해를 맞았다며 드론이 만드는 토끼가 하늘 위로 뛰어다녔다.
 
새해맞이의 절정은 카운트다운이다. ‘텐, 나인, 에잇….“ 숫자가 점점 줄어들어 2023년이 왔음을 알리자 새해를 맞는 사람들의 환호성과 폭죽의 폭발음이 겹치면서 세상이 왁자지껄하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카운트다운 할 때 화면에 나온 숫자가 너무 빨리 바뀌는 것이 아닌가? 분명 1초에 숫자 하나씩 넘어가는 게 맞을 텐데, 아무래도 1초에 둘씩은 나온 것 같았다.  
 
스마트폰의 타이머를 10초에 맞추고는 혼자서 카운트다운을 해 보았다. ”텐, 나인, 에잇….“ 역시나 숫자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언제부터 시간이 저렇게 빨리 흘렀단 말인가? 초침이 도는 벽시계를 봐도 숨 가쁘게 달린다. 얼마나 바삐 달리는지 몇 바퀴 도는 것을 보는데 멀미가 날 지경이다. 그러니 2023이라는 낯선 숫자를 앞에 두고 새해를 맞았다고 떠들썩거릴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주가 지나는 게 아닌가.
 


벽시계의 초침은 그렇게 분주히 달리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무리 바빠도 한 칸씩만 간다는 것이다. 초침이 두 칸 세 칸씩 달리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나마 한 칸 한 칸 조금씩 달리는 초침을 바라보다가 ’조금‘이라는 말이 와 닿았다.  
 
제아무리 갈 길이 바빠도 시계가 조금씩 도는 것처럼 아무리 어른이 빨리 되고 싶어도 사람은 조금씩 자란다. 나무도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열매도 조금씩 익는다. 주위에 보이는 것들이 하루아침에 된 것 같지만 사실 그 안에는 조금씩 달려온 꾸준함이 숨어 있다.  
 
누군가는 ’조금‘이 세상을 바꾼다고 했다. 설탕을 조금만 넣어도 음식 맛이 바뀌고, 비누를 조금만 써도 몸을 깨끗하게 씻을 수 있다. 햇볕이 조금만 비춰도 새싹이 힘차게 자라고, 비가 조금만 내려도 세상이 촉촉해진다. 연필이 조금만 남아도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고, 양초는 조금만 남았어도 주위를 환하게 비춘다.
 
꼭 많아야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조금이라도 세상을 넉넉히 바꾸는 것이 있다. 조금씩 흐르는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조금이 우리 인생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잠깐의 만남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고, 짧은 대화가 절망을 희망으로 인도할 수 있다. 한순간의 결정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고, 잠시의 방심이 큰 후회로 남기도 한다.  
 
세월을 묶어두고 싶은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2023년이라는 한 해는 출발 신호가 나자마자 내리 달리기 시작했다. 가는 시간이야 멈춰 세울 수 없을지 모르지만, 조금씩 흐르는 세월을 뒤쫓다 보면 분명 오늘과는 다른 내일을 만나게 될 것이다. 조금씩 흐르는 시간이 만들어 낼 놀라운 내일을 위해서라도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힘을 내자.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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