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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계묘년의 참담했던 기억

2023년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검은 토끼의 해다. 특별히 올해 계묘년이 흑색의 속성을 지닌 천간 ‘계’와 토끼 ‘묘’가 붙여지면서 ‘검은 토끼’의 해가 된다고 한다.
 
지난해 말, 교수신문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괴이불개(過而不改)다. 전국 대학교수 935명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50%가 선택했다는데 논어의 위령공편에 나오는 말로 ‘사람들이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고 다음은 14% 교수가 선택한 욕개미창(欲蓋彌彰)으로 ‘무엇이든지 덮으려고 하면 더욱 드러난다’라는 의미다. 둘 다 현재의 정치권을 향한 질타성 표현으로 특히 지난해 연말 이태원에서 158명의 젊은 생명이 후진국성 참변인 ‘길거리 압사’로 목숨을 잃었지만 누구 하나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인물이 없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 아닌가 싶다.
 
2023년 계묘년!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는성경 말씀에 따라 ‘괴이불개’ 하지 말고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해 새것을 안다’는 의미의 온고지신(溫故知新) 하는 정치권을 소원해 본다.  
 
성경 창세기에 노아의 홍수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하나님이 노아에게 찾아와 엄청나게 큰 배를 짓게 하신 뒤 40일 주야로 비를 쏟아 이 땅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쓸어버리셨다는 이야기다. 그와는 비견할 수 없을지라도 필자에게 1963년 계묘년 장마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아픔이다. 대하소설 ‘신불산’에 의하면 당시 장마가 두 달여 동안 단 하루, 아니 한나절도 빵긋해본 적이 없었다고 적혀 있음을 볼 때 나의 기억은 당시를 살았던 모든 사람의 아픔이 아닌가 싶다.
 


당시 라디오 소리는 읍내에 나가야 들을 수 있었다. 가끔 도시로 나간 동네 한량들이 고향을 찾을 때 성공의 표식으로 라디오를 들고 왔는데 이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뭐꼬? 저 작은 통속에 사람이 들어 있단 말이가?” 하셔 좌중을 박장대소케 했을 정도니 일기예보라는 말이 존재나 했겠는가?
 
장마는 원래 비가 쉬엄쉬엄 온다는 의미다. 그러나 1963년 계묘년의 장마는 달랐다. 계속된 비로 겨우내 땀 흘려 심고 여름내 가꾼 황금알 생명체 보리가 입도한 채파란 싹을 틔우는 이변을 연출하였다. 장맛비가 의미를 상실한 채 눈앞에서 가족의 호구수단을 앗아가고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농민들은 탈진한 채 빗속을 뚫고 들판으로 뛰쳐나가보리 이삭들을미친 듯이 베어 나르기 시작했고 식구들은 손으로 이삭을 훑어, 아랫목에 말리거나 가마솥에 찐 뒤 맷돌로 갈아 보리죽을 쑤었다. 이때 우리 아이들도 힘을 보탰는데 아무래도 힘이 약하다 보니 손대신 입을 사용하였는데 그 모습이 가관이 아니었다. 물에 퉁퉁 부어 반쯤 썩어 먹물이 자르러 한보리 이삭을 이빨로 잘랐으니 금새맹구잇빨에 얼굴은 각 모양의 검은 토끼 모습으로 변신하지 않았겠는가? 이 모습을 본 어른들은 “저런!” 하시며 작은 미소로 애잔함을 달래기도 하셨던 것 같다.
 
그때 우리 가족의 생명을 지켜준 보리죽! 잊을 수 없다. 더 안타까움은 어머니다. 한 번도잡수시는 모습을 삼간 채 늘 “나는 괜찮다. 나는 배 안 고프다. 너희들이나 많이 먹으라”였다. 그때는 정말 괜찮으신 줄 알았다. 어머니는 굶으셔도 정말 배 안 고프신 줄 알았다. 그래놓고 돌아서셔서 찬물로 허기를 달래신 모습을 왜 그때는 몰랐을까? 너무 송구하고 그립고 가슴 아프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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