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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라

새해를 맞으면서 거창한 ‘올해의 결심’을 정하는 짓을 그만둔 지 꽤 오래되었다. ‘작심삼일’이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남들도 다하니 나도 이것저것 결심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면, 소리만 요란스러웠지 제대로 이룬 것은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영어 공부 열심히 하자, 사람 구실 제대로 하자 따위의 결심을 40년 가까이 해마다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 실력은 오히려 쪼그라들었고, 사람 구실은 뻔뻔스럽게 후퇴했다. 부끄럽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뭐 대단한 일 이루겠다고 스스로를 옭아매고 아등바등하지 말고, 그저 편하게 열심히 살자고 마음먹고 살기로 했다. 물론, 되는대로 막살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 자주 읽는 것이 나옹선사의 시 구절이다. 틈날 때마다 붓글씨로 옮겨 쓰며 새긴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쓰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노여움도 내려놓고 아쉬움도 내려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셋째 행이 ‘사랑도 내려놓고 미움도 내려놓고’로도 알려진 이 시는 법정 스님의 애송시로도 유명하다.
 
자료를 찾아보니, 나옹(懶翁, 1320~76) 선사는 고려 말 공민왕의 스승이었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왕사(王師)인 무학 대사의 스승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인도의 붓다, 중국의 선사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깨달음을 우리말로 풀어냈던 고승으로, 한국 불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출한 인물이라고 한다.
 
고려뿐 아니라 중국에도 이름을 드날렸던 국제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경기도 양주 회암사에서 견성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인도에서 온 지공선사에게서 법을 받았다고 전한다. 꼬박 10년간 중국 땅을 주유하며 도를 닦고, 다시 고려로 돌아왔을 때 불과 37세였다. 나옹 선사는 출생부터 험난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세금을 내지 못해 관가로 끌려가던 만삭의 어머니가 길에서 낳았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그러니까, 태어날 때부터 생사를 넘나든 셈이다.
 
이렇게 훌륭한 분의 가르침이니 새겨들을 수밖에 없다. 가능하면 하나라도 실천하고 싶다. 하지만, 너무 어렵다. 우리 같은 저잣거리 중생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노여움도 아쉬움도 내려놓고 말없이 티 없이 살라는 말씀은 그런대로 어림짐작이나마 하겠는데, 물처럼 바람처럼 살라는 가르침은 참 어렵고 아득하다. 설마 출렁출렁 살랑살랑 건들건들 대충 살라는 말씀은 아니겠지….
 
물에 대해서는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를 거듭 새겨 읽으면 조금 더 알 수 있겠지만, 바람에 대해서는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답답한 마음에,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나 밥 딜란의 ‘블로잉 인더 윈드’ 같은 노래를 듣기도 하고, 나무숲 사이에서 춤추는 바람의 냄새를 들으려 애쓰기도 하고, 마종기 시인의 시 ‘바람의 말’을 다시 새겨 읽기도 한다.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나옹선사의 말씀은 결국, 세상의 순리를 거스르지 말고 자연스럽게 살라는 가르침일 텐데…. 자연스럽다는 말 또한 참으로 어려운 말씀이다.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함….
 
아무려나, 올해는 그렇게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살았으면 정말 좋겠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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