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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빈 방 있습니까’ 연극을 보고

최근 연극 한 편을 보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LA카운티 한 교회에서 공연된 ‘LA, 빈 방 있습니까?’라는 연극이었다.  
 
잘 아는 아이가 출연한다 하여 시간을 내어 관람했다. 극장은 관객 50여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소강당이었다. 출연 배우는 20대로 보이는 청년 여덟 명이었고, 그중 한 명은 지체장애인이었다. 처음 출연하는 장애인 아들의 연기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객석에서 바라볼 부모의 심정을 생각해보았다.    
 
 연극은 두 시간여에 걸쳐 몇 가지 메시지를 차례로 던지면서 진행되었다. 극의 정점은 마지막 부분 반전에 있었다. 성모 마리아가 방이 없어 마구간에서 예수님을 낳게 되는 성서 이야기를 뒤집고, 여관 주인이 성모님에게 자기 방을 비워주는 장면이다. 지체장애인 역할을 맡은 여관 주인 덕순이 연기가 압권이었다.  
 
 말과 행동이 어눌한 여관 주인 덕순이는 계산하지 않는다. 만삭인 마리아와 함께 온 요셉이  여관 문을 두드릴 때, 묻지 않고 제 방을 내준다. 제 몫을 먼저 챙기는 잘난 사람들과는 달리 장애인 덕순이는 힘들고 어려운 입장에 있는 한 여인의 처지를 먼저 생각한다. 빈 방 있냐고 물을 때, 따지지 않고 방문을 열어준다. 예수님께서 바라는 사람이 바로 그런 모습이 아닐까. 지체장애인를 출연시킨, 핵심 배우 역할을 장애인으로 설정한 연출자의 의도와 선택이 돋보였다.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덕순이가 남몰래 혼자서 수십 번 같은 말을 되풀이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지체장애인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달 되어왔다. 그들을 지켜보며 평생을 함께해야 할 부모의 심정까지도 가늠해보게 되었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과 사회적 인식이 일정 수준에 올라와 있는 미국과는 달리, 한인 사회가 장애인을 제대로 인식하고 돌보아주고 있는가, 새삼스럽게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스무 살 정도의 청년들이 한국어와 영어, 두 개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극을 이끌어 나가는 모습들이 보기에 참 좋았다. 젊은이의 발랄함과 재기 넘치는 대화, 연극이 의도하는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무리 없이 스며들게 하는 자연스러움도 좋았다. 연극 한 편이 전해주는 울림이 컸다.  
 
 먹고 살기 힘든 이민생활 중 이만한 작품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비교적 활발한 음악이나 미술, 문학과는 달리 종합예술인 연극 공연 횟수가 많지 않은 이유일 터이다. 화면을 통해 느끼는 영화와 달리 연극은 한 공간 안에서 배우가 온몸으로 관객과 소통한다. 그래서 감동이 배가된다. 이민사회에 좋은 연극이 더 많이 무대에 오르기를 기대하는 건 과한 욕심일까.  
 
 2023년 새해가 밝았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는 예수님 말씀이 새롭게 다가오는 아침이다. “빈 방 있냐” 고 누가 물어올 때, 머리 굴리지 않고, 계산하지 말고, “네, 빈 방 있습니다”라고 흔쾌히 내 방을 내줄 수 있는, 여관 주인 덕순이 같은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 그런 한 해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정찬열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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