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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오고가는 정, 감사한 마음

두어 달 전, 한 이웃이 이사를 갔다. 좀 더 자유롭고 보수적이며 살기 좋은 땅, 텍사스에 모여 살기로 했다며 떠났다. 전 남편과 이혼하고 이사 온 집이었지만 딸 셋을 올바르게 잘 키워낸 마음이 고운 여성스러운 엄마가 살던 집이었다. 그리고 딸들은 모두 결혼했다. 나이는 나보다 한참 어리지만 손자 손녀를 보았으니 참 행복한 여인이다. 아주 가끔은 이혼한 남편이 들러 간단한 집 수선을 도와주는 아름다운 장면을 보기도 했다. 한국 사람들은 이혼하면 대부분 원수처럼 소식도 끊고 연락도 안 하는 게 보통이였기에 난 신기했다. 본인들은 무엇인가 싫어서 헤어졌지만, 희생된 자식을 위해서라도 어른들은 그렇게 살아 선 안 된다고 난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을 판다는 사인이 붙자 조용히 이사를 온 이웃은 유럽에서 오래 살다 온 분들이었다. 난 늘 하듯이 내가 키운 꽃 화분을 들고 가 인사하며 환영했다. 안주인은 전 주인이 놓고 간 피아노를 얼마 전에 조율했다며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아직 가구가 들어오지 않아 널찍한 실내가 시원했다. 재택근무를 한다며 남편은 이층에서 내려와 간단히 나에게 목례를 하고 층계를 따라 올라갔다. 오십 대의 중년 부부였다. 우린 서로 비상연락을 위해 전화번호도 나누었다. 들어오라고 했지만 나는 사양하고 집으로 왔다. 두 번째 만난 부부라는데 어쩐지 밝은 인상이어서 전에 살던 이웃처럼 잘살 것 같다.
 
며칠 전 현관에 나가니 예쁜 선물 봉투가 놓여있었다. 누가 놓고 갔을까. 오래전 우리 집엔  대낮에 도둑이 다녀간 적이 있어 우리 집은 이중철창문을 설치했다. 밤에는 파섬이나 스컹크가 못 들어오게 아래쪽엔 촘촘한 그물을 쳐놓았는데 얌전히 선물 봉투가 놓여 있었다. 손잡이엔 구운 오렌지 조각이 리본과 함께 장식되어 있다. 정성이 깃든 솜씨였다. 안에 들어와 펼쳐보니 갓 구운 초콜릿 쿠기와 라벤더 꽃을 담은 주머니가 들어있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아들과 며느리, 막내딸의 이름이 적힌 카드를 열어보니 얼마 전 새로 이사 온 이웃이다.  
 
지금은 자식들 곁으로 가시거나, 세상을 떠나기도 했지만 크리스마스 쿠키를 준 오래전 이웃들이 생각났다. 전화보다는 나도 예쁜 카드와 작은 선물을 들고 저녁에 이웃을 찾아갔다. 안주인은 내가 준 크리스마스 선인장이 지금 꽃을 피웠다며 고마워했다. 그동안 수 십여 개의 화분을 이웃들에게 선물해 왔다. 감사하는 마음과 오고 가는 정으로.



최미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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