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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세월의 끄트머리에서

이기희

이기희

제일 두려운 건 늙는 것보다 사는 것이 시들해지는 것이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무료해지고, 내일은 지금보다 더 힘들고 지치며 살아가야 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생의 의미를 찿아 목적을 향해 질주하던 청춘 시절은 배가 고파도 욕망이 불타올랐다. 장애물은 혼신을 다해 뛰어넘었고 사는 것이 힘들어도 고통스럽지 않았다. 가난을 꼬리표로 달고 살아도 남루하지 않았으며 내일은 또 다른 시작이라서 달력의 새 장을 펼칠 때마다 가슴이 설레였다.    
 
청춘의 하늘은 진홍의 물감을 코발트빛 하늘에 풀며 노랑나비처럼 산들거렸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진초록의 물감으로 대지를 물들일 때면 젊음도 사랑도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꿈이였다. 오렌지색 물감이 수채화로 번지는 언덕에서 청실홍실로 익어가는 가을 들판을 바라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무엇을 바라며 누구를 위해 못다한 사연 접으려고 세월의 끝자락에서 펄럭이고 있는가.  
 
동그라미는 세발 자전거 바퀴처럼 잘 달린다. 굴렁쇠도 방향을 바꾸며 굴리면 잘 나간다. 굴렁쇠는 너른 길보다는 좁은 길이 더 좋다.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어 굴리면 더 재미있다. 네모난 사각통은 모서리가 걸림돌이 되지만 뒤집어 엎을 용기만 있으면 장애물 경기처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는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무기력증은 피로, 수면장애, 우울증, 집중력 저하로 몸과 마음을 엿가락처럼 축 늘어지게 하고 살 맛을 떨어지게 한다.
 
종점에 와 있다는 생각을 하면 돌아가는 버스를 놓친다. 종점에선 서둘러 막차라도 타고 되돌아 오면 된다. 희망의 샘터에 물이 마르면 다른 곳에 우물을 파면 물이 솟아난다. 나만 외롭고 불행하다는 착각에 빠지면 주변을 돌아보라. 나보다 백배 천배 더 힘든 사람들이 실낱 같은 희망 품고 매일을 살아간다.  
 
끝은 위험하다. 절벽, 낭떠러지, 막다른 골목에서 마지막 편지 띄우고 싶을 땐 ‘나’를 위해 사랑과 우정으로 용기와 희망을 주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한여름 밤에 불태우던 욕망을 잠재워 주던 너, 절망의 늪에서 손 내밀어준 그대, 가을 바람에 날려버린 못다한 약속 지켜준 당신, 추억의 비누방울 속에 동그랗게 새겨진 유년의 꿈이여도 좋겠다. 버티며 살 수 있는 온갖 희망이였으면 좋겠다.  
 
‘나의 마음 속에 조용히 내려앉아/ 세상 소식 전해준다/ 풀 먹인 연실에 내 마음 띄워 보내 저 멀리 외쳐본다 / 하늘높이 날아라/ 내 맘마저 날아라/ 고운 꿈을 싣고 날아라/ 한 점이 되어라/ 한 점이 되어라/ 내 맘 속에 한 점이’ –라이너스의 ‘연’ 중에서
 
튼튼한 실에 매달려도 연은 언제 바람에 몰려 추락할 지 모른다. 나무에 걸리면 꼬리를 접는다. 연은 찢어지고 끊어져도 수리해 다시 쓸 수 있다. 연과 연결된 실을 감는 얼레만 튼튼하면 다시 만들어 하늘 높이 띄울 수 있다.  
 
연 날리던 동무도 까르르 웃던 애들마저 떠난 마당에서 홀로 마음 속 연을 띄운다.    
 
영어 배울 때 가장 헷갈렸던 게 현재진행형과 미래진행형이다. 내일은 미래진행형이다. 오늘을 견디면 내일은 온다. 허전한 세월의 끄트머리를 참고 견디면 한 해가 저무는 것이 아니라 새 해 새 날이 다가온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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