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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좀 더 해줄 걸’의 후회

한밤중 앞도 보이지 않고, 위치도 모르는 인적없는 바닷가 오지 땅에서 자동차는 황토 늪에 빠져버렸다. 칠흑처럼 깜깜하고 인기척도 없는 인가의 등불만 가물가물했다. 우리 6명이 구조를 바라며 어둠 속에서 플래시를 흔들고 있을 때 건장한 원주민 청년 엔리케가 달려왔다. 우리 일행은 구세주를 만난 듯 안도의 환호성을 질렀다.  
 
엔리케는 그날 낮에 가재와 전복을 잡던 잠수복 차림으로 모래사장에 있던 나를 찾아온 바 있어 일행들에게도 구면이었다. 그는 우리가 밤이 되었는데도 지나 가야만 되는 길목에 나타나지 않자 아마도 사고가 났을 것으로 생각하고 밤중에 근처 여기저기를 찾아 헤맸다고 했다.
 
그는 곧장 차 밑으로 들어가 맨손으로 흙을  퍼내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에게 플래시를 비춰주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과거의 일이 쉴 새 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확히 25년 전 자정. 동반했던 원로 목사님의 차가 바닷가 모래언덕에 빠졌다. 그때 우연히 그곳을 지나치던 낯 모르는 한 청년이 지금처럼 혼자 맨손으로 차를 꺼내 주었던 것이다. 차가 움직이자 그는 ‘안녕’하며 손을 흔들며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바로 이 엔리케의 형이었다.  
 


엔리케의 형은 안타깝게도 생계를 위해 전복과 가재를 잡다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엔리케는 무능한 아버지와 형의 죽음을 보고 위험한 바닷일 대신 다른 직업을 갖기 위한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엔리케는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의 중학교에 다녔고 나는 2년 간 학비와 학용품, 그리고 자동차 연료비 등을 지원했다. 하지만 사정이 있어 학업을 중단했고 엔리케는 결국 형처럼 생계를 위해 위험한 바닷속에서 전복 가재, 성게 등을 채취하는 일을 해야만 했다. 얼마 전에는 수중 급류에 휩쓸려 7일간을 망망대해에 홀로 표류하다가 구조된 일도 있었다.  
 
엔리케가 형과 같은 운명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에 학업을 계속하도록 하지 못한 회한이 가슴 속을 채워온다.  
 
그는 24년 전 내게 받은 조그만 도움을 지금도 잊지 않고 나를 도와주려고 한밤중에 우리 일행을 찾아 헤맨 것이다. 그에게는 집도 땅도 없었다. 생계를 위해 매일 위험한 바다로 가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생존하기 위해 살아온 삶이다.
 
앞으로 이런 잘못은 다시 하지 않을 것 같지만 ‘좀 더 노력할걸’,‘좀 더 줄걸’,‘좀 더 참을걸’,‘좀 더 사랑해 줄걸’ 하는 교훈을 되뇌어 본다.  
 
이제 젊은 시절의 열정은 많이 희석되었다.  그러나 저녁 하얀 뭉게구름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처럼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할 수 있는 시간은 아직 남아있다고 믿는다. 엔리케의 거 일자리를 찾아주는 일을 시작해 본다. 지난 20년간 사귄 몇몇 현지인들에게 그의 구직을 부탁했다.

최청원 / 내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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