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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나는 충분히 사랑했을까?

나는 충분히 살았을까?/ 나는 충분히 사랑했을까?/ 올바른 행동에 대해 충분히 고심한 후에 결론에 이르렀을까?/ 나는 충분히 감사하며 행복을 누렸을까?/ 나는 우아하게 고독을 견뎠을까?
 
메리 올리버 시인의 ‘정원사’ 부분
 
 
 
질문이 많아지는 때가 있다. 시간에 대해 강박감이 몰려오는 나이쯤에 이르면 이 질문들은 때때로 자기 학대를 불러오곤 한다. “나는 충분히 살았을까?”라는 시인의 질문은 ‘그렇지 못했다’는 자책이 일부 깔려있기도 할 것이어서 질문은 후회를 동반하기도 한다.
 
지나온 길은 늘 미진하고 그래서 아쉽기 마련이다. 충분히라는 말에는 한계가 분명하지 않으므로 충분치 않았을 약간의 부분을 인정하며 아쉬워하게 된다.
 
최선을 다해왔다. 시간을 아끼려고 종종걸음을 치기도 했고 미움을 사랑으로 덮으려고 사랑의 문들을 활짝 열어젖히기도 했다. 충분히 산다는 것은 어쩌면 충분히 사랑한다는 말이기도 하리라. 삶이라는 바닥에 발을 딛고 동분서주하는 발걸음만이 아니라 가슴의 온기를 퍼 나르는 어떤 유동성 있는 넉넉한 행동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충분하다는 건 깊이와 높이와 넓이가 모두 흡족하다는 말이기도 하겠다.
 
무한한 시간성 안에서 유한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간의 횡포는 무자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살수록 줄어드는 시간의 화폭 위에서 무기력하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밀도가 점점 낮아지는 시간의 질감, 그 허술함 안에서 충분히 살아가는 일, 충분히 사랑하는 일은 더 가열해져야만 가능한 것 아닐까 생각된다.
 
사랑이 아니라면 아침을 맞고 저녁을 보내는 소소한 일상에서 배어나는 단어들은 단순하고 지루할 뿐이다. 주어진 일에 전념하고 짬을 내어 신간을 들춰보는 다소 맥락이 있다고 여겨지는 시간조차도 뱉어놓은 단어들이 활기가 없기 일쑤다.  
 
충분히 산 때문에 행복해지는 걸까? 충분히 사랑했기 때문에 감사한 걸까?  
 
충분히 산다는 건 충분히 사랑했다는 방증 아닌가 싶다. 누군가를, 뭔가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부산하게 발걸음을 놀릴 수는 없다. 몸이 파김치가 되도록 재바르게 잰걸음으로 걸을 수는 없다.
 
사랑의 이름으로 소진되는 에너지는 사랑의 이름에서 다시 얻는다. 그러므로 사랑은 그 스스로 역동이다. 그 스스로 활력이다.  
 
먼데 사는 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날마다 분주하게 살고 있지만 맘은 허전하다는, 한 해를 보내며 회한이 섞인 문자다. 중년 여자들의 대화는 시간과의 조율에서 오는, 시간의 속도감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에서 오는 막막함일 때가 많다. 우리 문자의 끝은 “아직 크게 아픈 곳 없고 가족과 이웃이 두루 평안하다면 올해도 대박을 친 것이다”라는 위안이었다.
 
그렇다 올 한 해도 충분히 살았고 충분히 사랑했다면 당신도 나도 대박을 친 것이다. 다소의 갈등과 어려움이 있었을지라도 시간의 협곡을 무리 없이 지나왔다면 그것이 최고의 대박 아니고 뭐란 말인가.  
 
오늘 하루가 충분히 살아갈 날들과 충분히 사랑할 날들을 위한 건배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올 한해가 충분히 감사하며, 행복을 누리며, 고독조차도 우아하게 맞이하려는 내일을 위한 충분한 준비였으면 좋겠다. 스스로를 북돋우며 격려하며 삶의 최대치, 행복의 최고치를 이끌어내려고 애쓴 당신도 나도 한 해 수고 많았다.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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