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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언어의 화석

화석은 흔적입니다. 옛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세상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화석은 흥미로운 자료입니다. 한편 화석은 달리 표현하자면 그 당시대로 굳은 모습입니다. 변하지 않고 멈춰있는 것이지요. 화석의 이런 두 가지 특징 때문에 어느 쪽을 강조하는가에 따라서 대상에 대한 태도는 긍정과 부정으로 나뉩니다.
 
언어에서도 그렇습니다. 언어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화석은 귀한 자료입니다. 옛 흔적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어 화석은 여러 곳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만, 아무래도 가장 흔적이 깊게 남아 있는 곳은 속담입니다. 속담의 기본 특성이 오랫동안 민중 속에서 사용되는 것이기에 변화가 적습니다. 예전의 단어나 문법이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속담을 보면 옛사람의 모습이 많이 담겨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에서 포도청이 무언지,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할 때 풍월이 무언지 모르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고 할 때 오뉴월은 정확히 언제인가요? 그나마 이런 속담은 많이 알려진 것이라 의미 추측이 가능하지만 자주 듣지 못한 속담은 아예 의미가 미궁 속에 빠집니다. 포도청이나 풍월, 오뉴월은 아직 화석이라고까지는 보기가 어렵습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와 같은 속담은 문화를 한참 설명해야 겨우 이해할 수 있는 속담입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는 어떤가요?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는 말을 아이들은 어떻게 이해할까요? 어쩌면 속담 전체가 화석 자료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임동권 선생의 ‘속담사전’을 보면 화석이 한 가득합니다. 고고학의 전시장이라고나 할까요?
 


‘아니 땐 굴뚝’이라는 표현은 문법의 화석을 보여줍니다. 현대어라면 ‘안 땐’이나 ‘때지 않은’이라고 표현할 겁니다. ‘아닌 밤중’도 비슷합니다. ‘하나님 맙소사’라는 표현의 ‘맙소사’는 옛 흔적을 보여주는 문법 표현입니다. 현재라면 ‘마소서’라고 표현할 겁니다. 그리고 우리의 언어 속에는 앞으로도 많은 표현이 화석으로 남게 될 겁니다.  
 
한편 언어교육에서 사용하는 화석화라는 말은 오류가 굳어져서 고쳐지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주로 발음에서 화석화된 오류가 많이 나타납니다. 자주 틀리는 문법이나 어휘도 화석화의 근거가 될 겁니다. 그런데 달리 보면 왜 외국어를 배울 때 화석화가 일어날까요?
 
저는 화석화도 중요한 의사소통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화석화된 발음이나 문법으로 이야기했을 때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새로운 방법을 생각했을 겁니다. 발음을 고치려고 더 애를 썼겠지요. 하지만 화석화로 굳어졌다는 말은 그 자체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했음을 의미합니다. 저는 언어교육에서 화석화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의사소통의 한 방법으로 이루어낸 결과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화석화라는 용어는 비유입니다. 비유는 이야기하고자 하는 마음을 봐야 합니다. 그래서 언어학과 언어교육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쓰입니다. 화석이라는 비유에 선입견을 갖지 않는다면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편견에서 벗어나서 어휘를 바라보는 것이 공부의 시작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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