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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멘붕(Men崩)

병동환자 브루스가 틈만 생기면 주장한다. “I am not mental.” - 표준영어로 “I am not mentally ill.” 할 것을 줄여서 하는 말. 자기는 정신병이 없다는 선언이다.
 
그래서 병동에 체류할 이유가 없으니까 어서 퇴원을 시켜달라는 압력이다. 병원 말고 딱히 살 곳이 없을뿐더러 설사 있다 치더라도 이런 식으로 강짜를 부리는 환자를 받아주는 시설이나 프로그램은 없다. 그도 나도 ‘멘붕’이 일어날 정도다.
 
멘붕은 브루스가 떠들어대는 ‘mental’의 ‘men’과 붕괴(崩壞)의 첫 자의 합성어로서 2000년대부터 한국에서 유행한 말이다. 2012년에 그해 최고의 유행어로 뽑혔다. 정신이 무너지고 깨진다는 뜻. 실성했다, 정신줄이 나갔다, 심하게는 미쳤다는 표현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영어와 한자어 쪼가리를 붙여서 만든 신조어의 신선함 때문인지 지금껏 인터넷에서 자주 쓰이고 있다.      
 
‘건전한 몸에 건전한 마음, A healthy mind in a healthy body’라는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격언을 유식한 티를 내면서 ‘Mens sana in corporesano’라고 라틴어로 말해 보라. 이때 첫 단어 ‘mens’가 바로 멘붕의 ‘멘’이다.
 


15세기 초부터 활발하게 쓰이기 시작한 ‘mental’은 전인도유럽어로 ‘생각하다’는 뜻이었다. 그 뿌리가 ‘comment, 언급하다’, ‘dementia, 치매’, ‘mentor, 스승’ 같은 단어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정신이상’이라는 뉘앙스는 1927년에 처음으로 생겨났다고 한다.
 
19세기 초에 태어난 ‘mental illness’라는 컨셉에서 뒷부분을 슬쩍 빼고 말하다가 그렇게 변천한 것이다. 당신과 나는 말을 완곡하게 하려고 말끝을 생략하거나 흐리는 세련된 수법을 쓸 때가 많다. 그러나 브루스가 ‘I am not mental’ 하며 주장을 굽히지 않을 때 어원학적 차원에서 그는 ‘나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고 역설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무념무상의 경지일까. 정신이 나갔거나 얼이 빠졌다는 고백?
 
나는 ‘건전한 몸에 건전한 마음’이라는 슬로건과 ‘건전한 마음에 건전한 몸’ 사이를 바쁘게 왕래한다. 전자가 유물론, 후자는 유심론이라 뭉뚱그리면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된다. 유물론적 정신과 의사는 약물치료를 신봉하는 반면에 유심론에 심취한 정신과 의사는 언어를 매체로 하는 정신치료에 기대는 수가 많다.
 
나는 유심론에 치우치는 성향이 강하다는 점을 당신에게 솔직히 고백한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학설을 추종하고 있다.
 
“브루스야, 네가 정신질환이 있건 없건 지금 우리 관계가 너는 환자, 나는 의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있겠느냐?” 그는 상대가 분명한 대답을 얻는 기쁨을 전해주는 아량이 없는 성격이다. 아니라는 말조차도 하지 않는다.
 
나는 브루스의 멘붕을 이런 말로 치료한다. “서로 역할을 바꿔서 내가 너, 네가 나라면, 다시 말해서, 내가 환자이고 네가 정신과 의사라면 나라는 환자에게 무슨 충고를 해줄 수 있겠니?” 잠시 후 그는 일갈한다. “I would say, ‘Bruce, you gotta take it easy’.” - “‘브루스야, 쉬엄쉬엄해야돼’라고 말할 겁니다.”
 
정색하고 그가 한 말을 곧이곧대로 그에게 반복한다. 그는 표정을 엉망으로 일그러뜨리면서 앞니가 많이 없는 입을 벌리고 히죽히죽 웃는다. 저 즐거워하는 ‘멘탈’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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