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삶의 뜨락에서] 열두 번째의 세월

12월은 특별한 음악이 필요한 시간이다.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12월의 노래는 반짝이는 불꽃 등불이 가득한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열한개의 세월 묶음을 뒤에 쌓아놓고 그 속에 달아 놓은 등불만큼 많은 이야기를 눈물과 웃음으로 버무려 담아낸다. 300여 백지 위에 남겨진 일기장은 꽃 피워낸 득의의 웃음과 넘어져 상처 입은 울음을 담는다. 빈손을 바라보는 씁쓸함과 한장의 지폐가 주는 안심과 잘 못 들어선 길에 섰던 낭패와 당신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받던 위로와 위협하는 세태의 눈길에 위축되던 용기와 드디어 열린 성문으로 안도하던 표정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들고 나며 채워지고 있다. 그때 왜 그렇게 조급했고 불안했고 거만했고 기분 좋았고 미안했고 으쓱했고 작아졌었는지 이유조차 까마득한 지나간 시간의 박제된 사진첩으로 남는다. 지금은 남모를 표정으로 한 장씩 꺼내 보는 그때의 시간을 계산하는 영수증이 한 묶음이다. 열두 번째 세월 속에서 뜬금없이 스며 나오는 이야기들이 조급해지는 시간을 꾸며주고 있다.
 
종점을 향하는 전차의 종소리가 들려올 것 같은 시간이다. 종점의 풍경이 차창 밖에서 흔들리는 때이다. 길었던 여정을 어떤 모양이든 마무리 하며 등짐을 내려놓는 자세가 되어 뒤를 돌아본다. 길게 내쉬는 숨소리에는 그만 발걸음을 멈추고 쉴 수 있는 곳에 도달한 안도의 숨결이 묻어난다. 길고 긴 산행 끝에 어느 능선에 자리 잡은 대피소에 도달한 피곤하지만 험한 산길을 무사히 주파해 냈다는 자랑도 먼지 가득한 얼굴에 내려앉는다. 이제야 지나온 험한 길옆에서 시야 가득히 들어오던 아름다운 경치들이 살아난다. 발길을 격려하던 이름 모를 꽃들의 미소도 살아난다. 산새들의 노랫소리와 깨끗하게 흐르던 시냇물 가슴 속을 시원하게 하던 맑은 공기의 청량함이 신발 끈을 푸는 그 시간에 귀한 경험과 느낌으로 온몸을 감싼다. 흘렸던 땀방울을 새삼 대견하게 세어보며 안식에 든다.
 
등불을 높이 밝히고 싶은 시간 속에 있다. 낮시간 동안 무미건조한 색깔로 숨죽이던 거리가 밤시간이 찾아들면 오색 빛 화려한 장식들의 불빛으로 가득 찬다. 어두움이 길어지는 계절에 그 어둠을 몰아내고 싶은 마음들이 등불을 밝히고 거리에 놓아둔다. 알 수 없는 세계로 사라져가는 과거라는 시간과의 헤어짐을 장식한다. 어둠 속을 가는 발걸음을 밝혀주는 등불이 된다. 차가운 바람이 있어 헤어짐을 얼게 하고시려운 손과 추워하는 몸이 따뜻한 털옷과 폭신한 장갑을 서둘러 꺼내 들게 한다. 열두 번째 세월이 차가운 하늘 아래 놓여있음은 괜찮은 모양새다. 따뜻한 바람과 피어나는 예쁜 꽃과 노래하는 새들에 둘러싸여 잘 가라 인사하기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회색빛 하늘 아래 눈 쌓인 길 위에서 찬바람 맞으며 잘 가라 손 흔드는 정경이 어쩌면 헤어짐과 어울릴 듯 하다. 그 회색 하늘 아래 어둠 속에서 등불 하나 켜 들고 헤어짐의 표상으로 삼는 것이 열두 번째 세월 속에 걸맞은 행사로 보인다.
 
세상에 많은 이야기가 끝에 도달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나 연극도 끝이라는 휘장을 내리면서 다음 이야기의 머리꼭지를 넌지시 남겨 놓고 돌아선다. 열두 번째 세월은 그런 특별함을 지니는 시간이다. 길었든지 혹은 짧았든지 허락되었던 세월을 끝맺음하면서 새로운 시간을 당신께 드린다며 낯선 문 앞에 세운다. 새로 열리는 길의 시작에 서 있는 기대와 희망이라는 문패를 달고 있는 대문의 빗장이 스르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끝과 시작이라는 묘한 공간이고 시간이다. 두 얼굴의 안내자를 만나는 기분이다. 열두개의 보름달을 기억하며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자신의 두손을 바라보는 시간에 조금은 경건해진다. 남은 시간을 세어보고 어찌 채워갈까 바빠지는 마음을 다둑이며 마무리의 손길이 나선다. 나무 그늘에 잠시 쉬어 앉은 나그네의 심정이 되어 이것저것 길손의 어깨 위에 매달려 있는 크고 작은 짐꾸러미를 정리하면 어느덧 어느 종착지에 서 있게 된다. 저쪽의 시작점이 다가오며 무표정으로 웃고 있다.



안성남 / 수필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