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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앤 테크놀로지] 뉴욕과학관에서 만난 알루미늄 추상화: 작가 윤경렬

뉴욕 홀오브사이언스(New York Hall of Science)는 퀸즈 코로나 공원 안에 있는 과학관이다. 1964년 뉴욕 세계박람회 당시 문을 열었다. 10월 15일부터 한국 출신의 추상화가 윤경렬 작가의 전시가 ‘큐빅 인셉션 시리즈 2’라는 이름으로 열리고 있다. ‘태초 적인 큐브’라고 해석해 본다. 손가락 마디처럼 작은 알루미늄 큐브는 마치 페인트 방울방울처럼, 혹은 물감에 적신 붓의 한 획처럼뻗어 나간다. 오드리 리즈(Audrey Leeds) 큐레이터는 추상화를 주로 그린 윤경렬 작가의 조각적인 진화라고 표현한다. 금속 재질이 두드러진 알루미늄 호일 혹은 알루미늄 컨테이너를 재활용하여 만든 메탈릭한 추상 작품이 주를 이룬다. 반짝이는 유성 같기도 하고 불이 켜진 도시의 밤 풍경 같기도 하다. 흰색 혹은 은색 줄무늬가 두드러진 배경에 자그마한 알루미늄 상자들은 공상과학 픽션에 나오는 우주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스페인의 벨라스아르테스 미술아카데미에서 수련을 거친 윤경렬 작가는 아크릴판이라든가알루미늄 호일 혹은 금박 같은 색다른 재료를 이용하여 대규모 추상화의 전통을 재현하고 있다. 이것은 1921년생인 알렉스 카츠 작가가 1912년생인 추상표현주의 작가 잭슨 폴록과 1923년생인 팝아트 작가 로이 리히텐슈타인 사이에서 자신만의 사실주의적 초상화라는 유니크한 장르를 만든 것과 유사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윤경렬 작가는 앵포르멜 적인 한국형 단색화적 추상화 대신에 지중해적 색감이 풍기는 원색적인 페인트로 그린 추상화를 그려왔다. 또한 금속성의 반짝임이 드러나는 특이한 재료를 이용하여 미래지향적으로 거창한 ‘도시적, 산업적인 풍경화’를 창조해냈다. 스페인에서 보낸 시간은 윤경렬 작가의 감수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윤경렬 작가의 풍경화스러운 추상회화는 게르하르트 릭터의 1968년 흑백 페인팅, ‘마드리드 도시풍경 Stadtbild Madrid’을 연상시킨다. 서울이나 뉴욕처럼 마천루가 즐비한 도시와 달리 마드리드 같은 유럽의 고도는 일정한 높이의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훨씬 인간적이다. 하지만 19세기 말의 도시계획 덕분에 사이사이 길게 뻗은 자동차형 대로도 눈에 띈다.  
 
‘큐빅 인셉션’ 작품의 특이점은 테크놀로지와의 결합이라는 것이다. 알루미늄 호일이 음식 포장에 처음 사용된 것은 1913년 라이프 세이버(Life Savers)라는 원색적인 반지 모양 캔디 포장이었다. 은박으로 싸고 그 위에 브랜드 특유의 색동종이 포장을 둘렀다. 원래 19세기 초반부터 통조림 깡통으로 흔히 사용되는 주석(tin) 또한 호일처럼 얇게 가공하여 음식물 포장에 사용되었다. 영국의 해군은 1820년대부터 주석으로 만든 통조림 음식을 제공받았고 1901년 미국에서는 American Can Company가 설립되어 각종 음식 제조업체에 깡통을 납품하였다.  
 


하지만 주석으로 만든 통조림 음식에서는 간혹 통조림 음식 특유의 맛이 났고 또한 북미대륙에서 주석보다는 알루미늄이 훨씬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어서 이차 세계대전 이후로 알루미늄이 음식물 포장 및 보관에 큰 인기를 끌었다. 1888년 즈음 피츠버그에 알루미늄 정련 공장이 마련되었고 1907년 Aluminum Company of America라는 이름으로 규모를 확장하였다. Alcoa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이 회사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알루미늄 제조회사이다. 가볍고 녹슬지 않는 알루미늄은 철강보다 활용도가 높아져서 항공우주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원자재가 되었다. 지금도 판매되는 레이놀즈 랩(Reynolds Wrap)은 리차드 레이놀즈가 1919년 세운 U.S. Foil Company의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이 되었다. 당시는 공장에서 제조되는 담배 혹은 음식물 포장 재료로 주로 납품하였고 지금처럼 베이킹이나 음식물의 보관, 보온 등에 사용하지는 않았다.  
 
윤경렬 작가의 2022년 새로운 작품들은 알루미늄 호일과 금박을 함께 쓰고 있다. 부조와 조각, 회화의 장르적 구분을 파괴하고 새로운 조형언어를 만들어가는 현대미술작가의 노력 뒤에는 광산업, 테크놀로지, 금속 제련술의 발달 및 환경보존의 철학 같은 미술을 넘어서는 많은 문화사적, 인문학적 고민이 담겨있다. 코로나의 위협을 뒤로하고 2022년 동계올림픽, 3월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에 이어 12월 사막의 나라 카타르에서 열리는 전무후무한 겨울의 월드컵 축구 경기를 겪으며 우리들의 다면적인 삶을 뒤로하고 알루미늄 호일로 만든 또 다른 차원의 세상을 경험해보는 것도 한 해를 마무리하거나 시작하기에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변경희 / 뉴욕주립대 교수·미술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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