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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AI가 일자리를 빼앗을까

ATM 보급으로 은행 점포 늘고
세탁기 나오자 세탁업이 성장
실업보다 불평등·양극화가 문제

그림 그려주는 인공지능이 화제다. 쓱쓱 대강 그린 스케치를 던져 주면, 경험 많은 전문가가 그린 듯한 작품을 만들어낸다. 심지어 어떤 분위기의, 무슨 내용의 그림이 필요한지 글로 써서 지시하기만 하면 멋지게 생성해내기까지 한다. 머지않아 인공지능이 인간 그림작가를 모두 대체할 것 같은 기세다.

 
과연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발전할까. 인공지능이 계속 발전하면 수많은 일자리를 모두 빼앗아 가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는 이들이 늘어간다. 적어도 지금 당장 우리야 영향이 크지 않더라도, 다음 세대나 그다음 세대가 되면 인간이 할 일이 없어져, 대부분 정부에서 나누어 주는 급여에 기대어 살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전망에 동의하지 않는 연구자들이 많다. 이들은 인공지능 발전이 대량 실업을 초래한다는 것은 성급한 걱정이라고 본다. 우선 어떤 일이 자동화된다고 해서 곧바로 그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사 일을 생각해 보자. 세탁기가 빨래의 노고를 덜어주지만 가사 일이 덜 필요하게 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꺼내고, 말리고, 개어 정리하는 데 사람이 필요하다.
 
더욱이 어떤 작업을 자동화한 결과 오히려 일자리가 늘어난 사례도 있다. 1970년대부터 ATM기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은행 창구에서 직원들이 현금 출납 업무를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창구 직원들이 대부분 일자리를 잃게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벌어진 일은 정반대였다. ATM이 도입되자 은행이 지점을 내는 비용이 낮아졌고, 그래서 더 많은 지점을 내게 되었다. 그 결과 전체적으로 창구에서 근무하는 직원의 숫자는 더 많아졌다.
 
그렇다고 해서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무조건 일자리가 많아지고 세상이 꼭 나아지기만 할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변화한 기술에 따라 사람들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세탁기 사례를 다시 생각해 보자. 세탁기가 보급되자 옷의 청결함에 대한 기준도 크게 올라갔다. 가끔 갈아입으면 족하던 옷을, 이제는 옷에 작은 얼룩이라도 생기면 곧바로 세탁하고 티 없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생각이 생겼다. 그만큼 세탁에 대한 부담도 늘었다. 그 결과 세탁업은 큰 산업으로 성장했다.
 
이처럼 산업 구조가 전반적으로 변화하면, 개인에게 요구되는 기술의 형태가 변하고 그에 따라 주어지는 보상도 달라질 것이다. 인공지능을 통해 개개인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역에 있는 이들은 더 많은 임금을 받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몫은 줄어들 수 있다. 그 결과 양극화가 심해질 수 있다. 그래서 일자리의 미래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파괴적인 대량 실업의 위험성보다 불평등의 심화와 양극화를 더 큰 문제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우리 일자리를 얼마나 빼앗을까 하는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면, 변화의 본질을 놓치기 쉽다. 자칫 인공지능과 인간이 반드시 대립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꼭 일자리를 없애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반대로 인공지능 발전에 따라 자동화가 이루어지면 근로시간이 줄어들어 삶의 질이 개선될 수 있다. 단순 반복적 업무가 줄어들고 더 창의적 작업에 집중할 수도 있다. 위험한 업무를 인공지능이 대체해서 더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 수도 있다. 세탁기가 사람들의 의복 청결에 대한 기준을 높인 것처럼 인공지능으로 작업에 대한 기대 수준이 달라지고, 그 결과 새로운 산업이 생겨날 수도 있다.
 
기술이 사회와 무관하게 발전해서 사회가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결정한다는 생각을 ‘기술결정론’이라 한다. 기술결정론적 시각에 따르면 우리에게는 그저 기술 발전에 찬성할 것인지 반대할 것인지의 선택지만 남게 된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이 그 자체로 사회 변화의 방향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변화할 미래 사회의 모습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
 
그러므로 인공지능의 발전을 두고 더 중요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따로 있다. 인공지능 기술을 어떻게 모두의 이익이 되도록 발전시킬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가져올 생산성 증대의 과실을 어떻게 하면 사회 구성원이 골고루 누리게 할 수 있을까. 지나치게 빠른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어떻게 안전망을 제공하고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이러한 질문이 더 필요하다.

김병필 /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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