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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몽상] 나보다 멋진 나

출생의 비밀은 통속 드라마가 빈번하게 활용하는 극적 장치다. 그때마다 비판이 나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장기에 한번쯤 이런 상상을 해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고귀한 집안이나 엄청난 부잣집에서 태어났는데, 남모를 사연 때문에 지금 평범하다 못해 부족함 많은 집에서 자라고 있다는 식이다.
 
한데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면 달라진다. 제 뜻과 상관없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한 설움보다는 제 뜻에 따른 선택과 그 결과에 대한 회한이 더 커진다. 이런 점에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원제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가 선보이는 멀티버스는 어쩌면 ‘출생의 비밀’의 어른용 대체재라고도 할만하다.
 
이 영화의 멀티버스는 스파이더맨이나 닥터 스트레인지가 활약하는 마블 영화 시리즈의 멀티버스와는 좀 다르다. 이 멀티버스에서 ‘나’는 각 우주마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데다, ‘나’는 다른 ‘나’들의 능력을 ‘버스 점프’라는 장치를 통해 흡수할 수도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에블린은 현재의 우주에서는 생활에 지칠대로 지친 중년 여성이다. 생계가 달린 빨래방은 세금 문제로 가압류된 데다, 레즈비언인 딸과는 갈등이 쌓여 폭발 직전이다. 이런 와중에 남편마저 이혼 서류를 내민다.
 
에블린을 연기한 배우 량쯔충(양자경)이 홍콩 무협·액션영화에서 활약해온 스타라는 건 주지의 사실. 영화는 이를 상기시키듯 레드카펫의 화려한 스타나 무협 고수를 비롯해 멋진 에블린을 여럿 보여준다. 뜻하지  않게 우주의 구원자로 낙점된 에블린은 이런 능력을 그때그때 흡수하며 적들에 맞서 화려한 액션 활약을 보여준다. 다만 ‘버스 점프’를 실현하려면 희한하고 때로는 해괴망측한 행동이 필요하다. 덕분에 영화에는 B급 감성과 코믹한 액션도 자주 등장한다.
 
현재의 에블린은 여러 에블린 중에도 가장 볼품없이 보인다. 영화는 이런 에블린이야말로 우주의 구원자이고 중심이라는 것을 선택과 가능성에 대한 독특한 궤변을 통해 설명한다. 사실 이 영화의 주제는 인생이란 드라마이자 이 우주의 주인공은 나, 그리고 이 드라마의 전개와 결말을 바꾸는 것도 나라는 식의 낯익은 이야기와 통한다. 영화는 재기발랄한 상상력, 그리고 미국의 아시아계 이민자 가족의 삶과 동양 무협 영화의 액션 전통을 한데 꿰는 전개가 재미있다.
 
배우의 변신도 흥미로운 데 량쯔충만 그런 게 아니다. 악역으로 그려지는 국세청 직원을 제이미 리 커티스가 연기하는 것도 놀랍다.

이후남 / 한국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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