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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우리들의 작은 축제

이기희

이기희

이젠 자식들이 내 부모다. 한 가지도 내 멋대로 결정 못한다. 모든 걸 자식들하고 상의한다. 딸은 동부 끝, 아들은 서부 끝에 살아서 오작교에서 견우직녀 만나듯 학수고대하며 다같이 모일 날을 기다린다. 온 가족이 함께 만나려면 사위 아들 며느리 딸 직장 스케쥴 조정하고 애들 유치원 영아반 날짜까지 짚어야 해서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럴 때는 머리 잘 돌아가고 몸 빠른 둘째딸이 총대를 메고 각 집안의 상태를 파악, 조율해서 최종 결정을 내린다. 직장에 매달려 월급 받는 처지가 아닌 나는 도매금으로 넘어가 오라는 시간에 비행기 예약하면 된다.  
 
 
올해 추수감사절 모임은 몇 주 당겨 뉴저지 딸네집에서 하기로 합의했다. 복잡한 공휴일 인파 속에 어린아이들 데리고 장거리 여행하기 힘들고 우리집에는 아동용 놀이 기구도 없어 행선지 후보에서 탈락됐다. 근데 내 속셈은 다르다. 추수감사절 모임을 미리 하면 사위나 며느리가 맘놓고 저희집 식구들과 편안하게 추수감사절을 즐길 수 있다. 사위 부모는 딸네집 근처에 살고 며느리 부모도 근교에 산다. 며느리는 아들 없는 집안 맏딸이라서 아들 노릇을 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 만나면 어떠리. 편하게, 쉽게, 마음 다치지 않게, 서로 배려하고, 껴안아주고, 격려해 주고, 조금 아쉬울 때 헤어지면 다시 만날 시간이 기다려진다.  
 
행복은 느낌으로 온다. 아무 것도 안하고 아무 일도 없어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 따스하면 그게 행복이다. 알콩달콩 왁자지끌 자고 나면 먹고, 먹고 나면 조잘거리다가 또 먹고, 일없이 비비고 히히덕거리다가 한지붕 아래 잠든다.  


 
두살부터 다섯살까지, 번갯불에 콩 튀듯 설쳐대는 손주 네명은 돌보기는커녕 보기만 해도 정신이 헷갈린다. 할머니, 미미, 그랜마 등 혀 돌아가는 대로 날 부르는데 놀아주기도 벅차다. 그 뿐이랴! 가게보다 더 엄청나게 쌓인 별의별 장남감은 갖고 노는 방법을 몰라 허둥댄다. 미국 50주 찿아넣는 퍼즐게임은 내가 금방 위치를 찿아내는 주는 뉴욕, 캘리포니나, 플로리다, 미시건 그리고 내가 사는 오하이오 뿐이다. 멍 때리고 망설이면 기저귀 찬 두살 짜리 손녀가 ‘요기’라며 아이오아 유타 주 등을 손가락으로 짚어준다. 영어도 딸리고 게임도 잘 못하지만 얼굴 안 잊어버리고 졸졸 따라다니는 게 기특하고 귀엽다.  
 
옛날 옛날 흥부놀부 땅따먹기 하던 시절, 엉금엉금 기어가는 첫 손녀 베이비시팅 하다가 내가 깜빡 잠이 들었다. 아들 녀석이 셀폰으로 찍어 ‘손주 안 보고 쿨하게 잠든 할머니’란 타이틀 부쳐 가족들에게 돌렸다. 소문은 좀 난처했지만 덕분에 애들 돌보는 임무에서 해방됐다. 이번에 또 잠들면 사진 찍어 증거 확보할 경우 한장에 100불씩 주기로 약속했다. 돈 아까와 눈 부릅뜨고 손주들과 놀았다.  
 
세 집 식구가 모이니 대가족이다. 방송에서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활약하던 둘째 덕분에 맛난 요리 매일 얻어먹으며 우리들의 이름다운 축제는 끝이 났다.  
 
수고는 둘째가 했는데 잘 놀다 와서 몸살 기운이 돈다. 손주들 비위 맞추느라 너무 용썼나. 가족은 사랑이다. 헤어질 수 없는 만남이다. 만나고 또 헤어지지만 지워지지 않는 작은 행복으로 가슴에 꽃망울 피운다.  
 
요란 떨지 않아도 서로 어깨 부딪히며, 만남을 재촉하지 않고 그리움 새기며, 우리 애들이 정성으로 키워주신 할머니를 그리워하듯, 내 손주들 기억의 바다에 ‘미미’ 혹은 ‘할머니’라는 작은 이름의 풀잎으로 떠다녔음 좋겠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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