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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가 쫓는 '러스티'는 무엇일까

한 때 플로리다주에서는 ‘그레이하운드 경주(Greyhound Racing)’ 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스포츠였다. 한창 흥행했을 때에는 미식축구 다음으로 인기가 높았던 도박성 스포츠였다.  하지만 동물보호단체들의 비난과 반발로 많은 경주장이 문을 닫았고, 아직 몇 곳은 여전히 흥행 중에 있다.
 
경주가 시작되기 직전, 조련사는 ‘러스티(Rusty)’ 라 불리는 ‘가짜 토끼’를 가져와서 개들 앞에서 흔들며 펜스 앞을 왔다 갔다 한다. 이때 펜스 안에 개들은 흥분해서 창살에 머리를 들이받으며, 토끼를 잡으려고 안달이 난다.  
 
드디어 장내 방송으로 “지금 트랙에 러스티가 등장합니다” 라는 굵직한 목소리가 들리면 군중들은 함성과 동시에 펜스 문이 열린다. 개들은 당장 러스티를 잡으려고 죽을 힘을 다해 튕겨 나간다. 러스티도 개들 앞에서 잡힐 듯, 말 듯 트랙을 따라 빠르게 달린다. 트랙을 돌아 결국 결승점까지 도달하면 러스티는 작은 구멍 안으로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견사(犬舍)로 돌아온 개들 중, 선두주자로 결승선을 패스한 개가 숨을 헐떡거리며, “조금만 더 빨랐으면 그 토끼를 잡을 수 있었는데, 아~ 정말 아쉽다!” 그러자 2등 주자인 친구 개도 “다음번엔 그 녀석이 내 제삿밥이 될 거야! 오늘 정말 속상하다” 라고 아쉬움을 토로하며 피로감에 털썩 주저앉는다.
 


물론 그다음 경주에서도 러스티는 무사히 돌아 왔고, 개들은 매번 죽을 뚱, 살 뚱, 결코 잡지 못할 토끼를 쫓아 달렸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이.
 
그레이하운드 경주를 즐기는 다수의 군중(인간)들은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멍청한 개들 같으니, 모든 게 조작된 걸 모르고 죽기 살기로 뛰는 거냐? 러스티를 진짜 토끼로 아는 거냐?”  
 
혹시, 우리는 새벽마다 잠을 깨워주는 알람 소리가 “지금 러스티가 등장합니다” 라는 장내 방송으로 들리지는 않는지?  급하게 알람을 끄고, 샤워하고, 옷을 주워입고, 자동차 시동을 걸자마자 일터로 튕겨 나가는 것이 펜스가 열리면 러스티를 잡으려고 트랙을 따라 달리는 그레이하운드와 무엇이 다른가?  
 
우리가 쫓는 러스티는 테슬라 전기차, 새로 지은 콘도, 럭셔리한 사무실, 증권투자, 노후대책 등 인가? 청년이라면 새 여친을 찾고, 더 좋은 직장을, 멋진 데이트를, 돈을 벌어 연인과 여행을, 등등 이런 것들이 그들의 러스티일까?  
 
러스티를 쫓아 달리는 것은 인생을 끊임없이 경주로 만들고, 경쟁은 만성 피로와 허무로 이어진다.  어느 날, 경주장의 러스티를 끌어가는 기계에 고장이 났다. 그러자 러스티는 뒤따르던 개에게 거칠게 잡아 채어 물려 버렸다. 행운의 경주견은 토끼를 물어뜯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거 가짜 토끼잖아! 내가 속았네!” 그 개는 결국 예전처럼 전 속력으로 러스티를 향해 달리지 않는다. 가짜 토끼를 알게 된 그레이하운드(개)는 조련사에 의해 지체없이 경주장에서 퇴출되어 버린다.  
 
요즘 한국에선 두 마리의 풍산개를 밖으로 퇴출한 사건이 발생했다.  정가(政街)에선 정치꾼들의 ‘찬반 논쟁거리’가 되고, 국민은 ‘키우고 정든 반려견을 그렇게 야멸차게 내칠 수 있을까’ 가 화두이다.
 
우리 옛 속담에 “딸은 옆집에 줘도, 개는 옆집에 못 준다” 라는 말이 있다.  
 
조련사는 흥행에 경쟁력이 없어진 개에겐 더는 돈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고 한다. 풍산개의 주인도 조련사 출신이었을까?  결코 애견가는 아닌 것 같다.      

이보영 / 전 한진해운 미주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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