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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미음과 비읍의 세상

사람의 말소리는 저마다의 느낌이 있습니다. 한 가지 느낌만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곤란합니다만 느낌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심한 주장입니다. 좋아하는 발음이 있고, 덜 좋아하는 발음이 있습니다. 따뜻한 느낌도 있고, 차가운 느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음성 상징이라는 말도 사용합니다. 소리는 상징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 상징을 잘 들여다보는 것도 언어를 보는 관점입니다.
 
미음 소리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입을 다물고 낸 소리이기에 따뜻한 공기는 입안을 맴돌고, 드디어 콧길을 스르르 새어 나갑니다. 우리말에서 미음의 대표는 엄마입니다. 엄마라는 말에 미음이 두 개나 담겨 있음은 따뜻한 위안입니다. 엄마는 어라는 모음에서 시작해서 아라는 모음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미음과 미음이 담겨서 묘한 느낌이 혀의 끝에 닿고, 입안에 맴돕니다.
 
아가가 입술을 열고 제일 먼저 툭 내놓는 소리는 미음과 비읍입니다. 의도한 소리가 아니기에 ‘툭’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아마도 그러한 이유로 세상의 수많은 언어에서 미음과 비읍은 ‘엄마, 아빠’가 되었습니다. 내 소리를 기뻐했던 두 분이 자신의 이름을 아가가 처음 낸 두 소리로 정했던 것입니다. 세상에 입술이 처음 모이고, 소리가 흐르면서 내놓는 소리였기에 그대로 그리움의 소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에 놀라면 자연스레 ‘엄마’를 찾습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겠죠. ‘엄마야’라고 놀라며 찾은 엄마에 늘 안도합니다. 엄마가 내 손을 놓을까 봐엄마손 꼭 쥐고 빠른 걸음을 걷던 그 날의 기억은 잊을 수 없는, 내 속에 새겨진 기억입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놀랄 때 엄마를 찾는 것을 보면 참 놀랍습니다. 이제 엄마가 큰 도움이 안 될 텐데 말입니다.  
 


엄마는 그대로 먹을 것이기도 합니다. 엄마를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맘마’를 찾고, ‘맘마 줄까’는 배고픈 아이에게는 가장 기쁜 말입니다. 이렇게 맘마가 유아어에서는 음식을 의미합니다. 맘마는 미음이 세 개나 담겨있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말에서는 맘마만큼이나 간절히 찾는 ‘물’도 미음으로 시작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맘마와 물과 이어지는 동사도 우연찮게 미음으로 시작하는 단어가 많습니다. ‘먹다’와 ‘마시다’가 바로 그 미음 동사입니다. 저는 미음으로 시작하는 동사는 왠지 가까운 감정이 듭니다.
 
한편 아빠는 비읍의 시작입니다. 아이가 미음과 함께 제일 먼저 내는 소리는 비읍입니다. 그리고 비읍의 대표는 바로 아빠인 겁니다. 아마도 아가는 미음과 비읍으로 세상을 구별하고, 엄마와 아빠를 나누었을 겁니다. 비읍과 연결되는 단어는 빛, 불, 봄 등이 눈에 띕니다. 미음의 소리가 다문 입안의 기운이라면, 비읍은 입 안에 담았다가 살며시 터뜨리는 따뜻한 기운입니다.
 
그런데 아빠는 한걸음 떨어져 있는 느낌입니다. 아이들은 배가 고파도, 놀라는 일이 생겨도 아빠를 먼저 찾지 않습니다. 아빠라는 존재는 오랜 시간 반복에 의해서 각인되는 존재이지 본능적이지는 않은 느낌입니다. 자연스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종종 아빠가 맘마까지는 아니어도 ‘밥’이라는 단어와 이어지고 있음은 뜻밖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미음과 비읍은 나를 낳아준 소리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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