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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낡은 아파트 기둥

한번은 업무 관계로 변호사인 A와 거래처 사람인 B를 A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변두리 지역에 다닥다닥 붙은 6개의 집을 사서 지은 빌딩은 잘 나가는 로펌답게 벤틀리부터 BMW와 벤츠를 비롯한 고가의 차가 주차장에 즐비했다. A의 회의가 길어져서 우린 한참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동안 유태인의 작은 모자인 야마카를 쓴 B가 미안한 듯 친구 아들 얘기를 꺼냈다.  
 
동부에 있는 한 유서 깊은 아이비리그 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친구 아들은 마약 중독자가 되었다고 한다. 기숙사가 너무 추워서, 공부에 더 집중하기 위해, 농구 경기에서 100년도 넘게 매년 지던 팀이 이긴 것을 기념하기 위해, 친구들과 더 친밀하게 지내기 위해 등등의 이유로 마약에 손을 댔다.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마약은 점점 그 정도를 넘어 학교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서 결국 자퇴했다.  
 
LA로 돌아왔지만, 아들은 마약을 하러 친구네 집을 전전했다.  어느 아파트에서 아들을 봤다는 소리를 들은 엄마는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아들을 보기 위해 한 시간을 넘게 걸어갔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사그라져가는 기억 속에서 엄마가 원했던 것은 아들을 찾는 것이었다. 엄마가 자꾸 집을 나가자 가족들이 돌아가며 감시했지만, 감시가 소홀해지면 엄마는 낯선 아파트까지 걸어와서 아파트 기둥을 잡고 울곤 했다. 또 와서 울고 있는 엄마를 본 아파트 매니저가 가족에게 연락해서 그날 데리러 온 사람이 바로 그였다. 다른 사람들은 왜 엄마가 계속 이 낯선 동네에 오는지를 몰랐지만, 그는 즉시 알았다. 누구의 집인지 생각은 안 나지만 마약 하려고 몇 번 왔던 집이었다. 얼마 후 엄마는 숨졌고 장례식에서 아들이 얼마나 슬프게 울었는지 B는 돌아가신 자기 어머니에게 미안했다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흥미로운 사연이어서 계속 듣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다짜고짜 물었다. 누구의 이야기입니까? 대답 대신 B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허름한 동네에 어울리지 않게 잘 가꿔놓은 아파트가 보였다.  차고로 사용하는 1층은 일정한 간격으로 벽이 있고 앞쪽은 쇠기둥이 박힌 아파트였다. 산뜻하게 페인트칠한 아파트인데 유독 맨 앞에 있는 기둥만은 오래된 페인트가 있고 검게 녹슨 쇠 파이프가 속살을 보였다.
 


낡은 아파트 기둥을 보며 스토리를 짜깁는 데 잠시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젊고 능력 있고 명망 있는 변호사가 LA의 변두리 지역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저 기둥이 아닐까.

이리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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