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광장] ‘분노의 포도’를 다시 읽는 이유
세계 1차대전 당시 미국 농업은 기계화, 대형화되면서 농산물의 유럽 수출로 호황을 누렸다. 전쟁이 끝나 유럽에서 농업이 재개되자 수출길이 막혀 농업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대공항 시기 중부지역에서 몇 년 연이은 자연재해가 발생해 농장이 황폐해졌다. 많은 농민이 땅을 버리고 고향을 떠났다. 소문만 믿고 캘리포니아로.작가 존 스타인벡은 오클라호마까지 가 이주민들의 힘든 여정에 동행하면서 유명한 소설 ‘분노의 포도’를 구상하고 썼다. 그는 이 소설에서 당시 소작 농민들과 이주 노동자들의 실상을 너무 적나라하게 묘사해 그것을 불편하게 여긴 기득권층으로부터 철저하게 배척되었다.
퓰리처상과 노벨상까지 받은 작품이지만 그의 고향 캘리포니아와 소설 속 주인공 톰 조드가 살았던 오클라호마에서는 판매가 금지되었고 일부 주에서는 책이 불태워지기도 했다.
소설의 주인공 조드는 가족과 케이시 목사와 함께 낡은 트럭을 타고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이 여행이 얼마나 험난했던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여행 중 숨지고 형과 여동생의 남편은 일행을 떠나 버린다.
우여곡절 끝에 캘리포니아에 도착했지만 일거리가 충분한 희망의 땅은 아니었다. 판로가 막힌 채 과잉 생산된 농작물, 넘쳐나는 일꾼들로 임금을 깎고 또 깎는 불공정한 현실, 가격 유지를 위해 농작물을 강에 버리는 농장주들, 그것을 비호하는 세력가들, 굶주린 노동자들은 분노의 눈동자가 포도알처럼 커간다.
케이시 목사는 이 비참한 노동자들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운동에 뛰어든다. 케이시 목사가 피살되자 조드도 노동운동에 뛰어들기 위해 집을 떠난다. 가족들은 일거리를 찾아 옮겨 다니다 여동생 로즈가 사산하는 아픔을 겪는다. 어머니와 로즈가 그 지역에 닥친 홍수를 피해 언덕에 있는 헛간으로 들어갔다가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노동자와 아이를 만났다. 로즈가 누워있는 노동자의 머리를 않고 자신의 젖을 꺼내 물린다. “ 드세요. 드셔야 살아요.”
코로나 사태 때문에 실시한 비상 경제정책의 후유증, 소련과 우크라이나의 전쟁 장기회가 세계경제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유럽은 경험한 바 없는 혹독한 겨울을 예상하고 아르헨티나 등 여러 나라에서는 물가 급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상화 되어 있다.
한국도 이 격랑을 피해가기 힘든 모양이다. 노인 복지 예산을 삭감해 하루 11시간 일한 노인 일당이 겨우 만원 남짓이고,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노인들은 점점 더 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다행히 저소득층을 위한 식품 보조비를 상향 조정하는 등 소외 계층을 위한 정책을 유지 강화하고 있다. 경제가 비교적 탄탄한 두 나라의 취약 계층을 위한 정책 차이는, 지향하는 정책의 우선순위에 대한 정부의 입장 차이 때문인 것 같다.
스타인벡이 말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아픈 사람들이다. 서로 더 이해하고 더 아픈 사람을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 세계인과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일 것이다.
최성규 / 베스트 영어 훈련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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