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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가로등

아주 몇 해 전에 우리 부부가 당시 중학생인 두 아이와 함께 자동차로 유럽여행을 할 기회를 만들었다. 그 당시에 재료공학 연구실에서 일하는 애들 아빠가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학회에서 논문 발표를 하게 되어서 이 기회에 우리 모든 식구가 유럽여행을 하자는 생각으로 따라나선 것이다. 정작 회의장에서 학회가 진행되는 동안 나와 아이들은 낯선 뮌헨 거리를 구경하면서 이따금 쇼핑도 하고 점심때가 되어서 우리 중에는 아무도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지만, 그냥 식당에 들어가서 우리가 아는 영어와 손짓 발짓을 보태어 맛있는 점심도 시켜 먹고 학회가 끝나는 시간까지 긴 시간을 길가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하고 행인을 구경하는데 오히려 우리가 그곳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기도 했다.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지면서 고풍스럽고 키 큰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하니까 이 도시는 아름답고 낭만이 가득 찬 마치 어느 소설에 나오는 낯 모를 도시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가로등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 사방을 환하고 경이롭게 만들어 주기도 하나보다 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내가 사는 탬파 북쪽 마을은 탬파 도심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인데도 길마다 앞을 밝혀주어야 하는 가로등이 한 군데도 없다. 어두운 새벽에 교회에서 아침 기도회에 참석하려면 구불구불 잘 보이지 않는 시골길을 다만 아스팔트에 그려놓은 노란색과 흰색 줄을 따라 조심스레 운전해야 했다.  
 
나의 침침한 밤눈을 좀 고쳐볼까 해서 안과의를 만나봤지만, 시력이 나쁘지 않다고 그냥 같은 안경을 쓰라고 한다. 아무래도 나이 들면 노인들은 차 사고이든 낙상이든 모두 특별히 조심해야 하므로 매주 이른 아침에 가야 하는 새벽기도회를 그래서 그만둘 수밖에 없는 서운함이 있었다.  
 
이른 시간이지만 오늘은 교회에 중요 모임이 있어서 새벽길을 나서야 했다. 마침 지난주에 새로 사온 승용차를 타고 교회로 향해 아직도 칠흑 같이 어두운 밤에 집을 나와 얼마를 골목길을 운전해 가는데 아, 이건 길목마다 앞길이 훤하게 보이고 사방에 서 있는, 어디로 회전해야 하는지 알리는 길 표시판도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이제까지는 내가 가로등이 없어서 밤 운전을 포기하기까지 했는데…, 하필이면 이때 내가 새로 산 새 차가 도착했고 이 새 차에는 high beam이 자동으로 켜졌다가 꺼졌다 하는 장치가 장착되어 있었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언뜻 생각에 누군가가 내가 어두운 밤 운전을 두려워하는 것을 아시고 지금 나의 앞길을 이렇게 밝혀 주고 계신다는 이 놀라운 일을 깨닫는 순간 나는 당장 길옆에 차를 세우고 하나님께 깊이 감사기도를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차를 천천히 운전하면서 지금 이 시각에도 주님은 나와 아주 가까이 동행하시면서 보이지 않는 그의 손으로 오래전에 뮌헨 저녁을 밝히던 멋있고 환한 가로등을 내 앞길에 수없이 세워 놓고 계심을 바라보면서 감사한 마음이 내 눈시울을 적신다.

황진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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