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헤어날 수 없는 박찬욱과 탕웨이의 안개 낀 미로

헤어질 결심
(Decision to Leave)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이 정훈희의 1967년 히트송 ‘안개’를 듣고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이다. 영화에는 정훈희/송창식의 듀엣 버전이 반복적으로 흐른다. [MUBI]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이 정훈희의 1967년 히트송 ‘안개’를 듣고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이다. 영화에는 정훈희/송창식의 듀엣 버전이 반복적으로 흐른다. [MUBI]

영화 리뷰

영화 리뷰

박찬욱은 잔인하다. 그는 어차피 편안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아니다. 박찬욱은 멜로 정서가 아닌 잔인함으로 애잔한 사랑을 만들어 내어 관객의 마음을 파고든다. 우리는 ‘헤어질 결심’에서 파괴적 사랑, 붕괴된 사랑 그리고 극에서도 보기 드문 극적 사랑을 본다.  
 
탕웨이는 신비하다. 그녀의 어눌한 한국말과 고혹적 비주얼에는 강인함과 유연함이 동시에 존재한다. 탕웨이는 그 강인함으로 박찬욱의 팜므파탈이 된다. 그리고 그 유연함으로 남자를 유인하고 마침내 그를 파멸시킨다. 그러나 그 파멸은 멸망이 아니다. 소멸되지 않는 영원한 사랑으로의 헌신이다.  
 
‘헤어질 결심’은 헤어짐으로 이루어 내는 극한 사랑의 패러독스다. 사랑이란 말 없이 사랑을 느끼고, 헤어짐을 결심함으로 사랑을 지켜낸다. 잔인한 박찬욱과 신비한 탕웨이가 결합하여 만들어낸 영화 ‘헤어질 결심’. 박찬욱의 사랑은 이번엔 어떤 사랑일까. 파멸? 아니면 자멸? 영화의 제목은 왜 ‘헤어질 결심’일까.  
 
영화는 형사 해준(박해일)과 용의자 서래(탕 웨이)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등반가 기다수가 산에서 떨어져 죽는다. 경찰은 그의 휴대폰에서 구타를 당하고 멍이 든 여성의 사진들을 발견한다. 남편의 죽음에 서래는 의외로 침착하다. 아름답고 매혹적인 그녀에게 해준은 깊이 빨려 들어간다.  
 


의심이 서로의 관심이 되고 끝내는 (헤어질) 결심이 되는 사랑. 박찬욱은 이 두 사람의 사랑을 영화의 살인사건들처럼 미결로 처리한다. 영원이라 불려질 미결. ‘헤어질 결심’은 유달리 스포일러가 요주의 되는 영화다. 곳곳에 숨어있는 메타포들을 놓치기 쉽다.  
 
서래의 남자들은 중국으로부터 밀입국한 그녀를 폭행하고 통제했다. 그녀가 살인 용의자로 의심받는 이유이다. 아니 의심받을 행동들로 자신을 의심케 한다. 사건을 미해결 상태로 내버려 두는 주체는 형사 해준이 아니다. 용의자 서래다. 둘이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헤어지는 것이기에.  
 
박찬욱식의 장르 비틀기. 형사와 용의자의 등장으로 언뜻 스릴러처럼 느껴지는 영화. 후반부로 달려가면서 자연스레 두 사람의 애정에 몰입되고, 그러다 다시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로의 전환. 너무도 세밀하게 의도된 반전의 반전의 반전. 영화 내내 안개 낀 듯한 누아르 분위기, 모든 게 불확실한 다층적 플롯 안에서 전개되는 두 사람 사이의 연민, 동질감 그리고 사랑.  
 
디테일한 미장센으로 치장하고 히치콕 스타일의 긴장으로 138분 동안 진행되는 ‘헤어질 결심’은 지난 5월 박찬욱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고 의당 황금종려상을 받았어야 했다는 의견들이 두루 비평가들 사이에서 공감되면서 미국 상륙을 기대하게 했던 영화다. 2023년 오스카상 국제영화상 후보로 우선 선을 보이지만, 2022년 마감 시즌이 되면 각종 영화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의 주요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릴 것이 분명하다.  
 
관객들에게 상상을 건네는 중의적이고 모호한 시퀀스, 문어체 대사,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 결코 명쾌하지 않은 결말 등 박찬욱 영화의 특징들이 그대로 살아있다. 단지 서래라는 캐릭터 묘사에 있어 성이 배제되어 있음은 커다란 변화다. 이 대목에서 떠올려지는 서래의 대사,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죽음조차 계획하는 서래의 헤어질 결심. 관객들을 매혹시키는 주체는 서래다. 해준을 사랑하는 그녀의 특별한 방식은 불행하게도 파괴적인 형태를 취한다. 산에서 시작, 바다로 옮겨가는 영화는 사랑의 영원성을 의미하는 ‘파도’라는 메타포에 사랑을 싣는다. 밀려오는 파도, 사랑을 쓸어 가버릴 그 파도의 잔혹함. 파도에 파묻힌 후에야 비로서 남겨지게 될 서래의 잔상. 엔딩의 여운, 그 근저에는 오로지 사랑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서래에게 있어 사랑은 영원해야만 하기 때문에.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라는 해준의 고백. 붕괴되는 것은 해준만이 아니다. 영화가 끝나고 자리를 뜨지 못하는 관객의 마음에서도 그 붕괴 상태는 꽤나 오랫동안 유지된다. 박찬욱은 참으로 잔인하게 관객을 무력감 속으로 몰아넣는다. 서래를 향해 깊어만 가는 연민, 어쩌면 황홀함과도 맞닿아 있을 그 무력감은 그 어느 영화에서도 접해보지 못한 영화적 경험이다.

김정 영화평론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