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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고 기도하니 모든 매듭 풀리더라"

김상복 목사 인터뷰

 
 
와싱톤중앙장로교회에서 열리는 한미국가조찬기도회 기조연설자로 초청된 김상복 목사를 14일 오후 버지니아 센터빌에서 만났다.  
대한민국 기독교계의 대표적 지도자로 알려진 김상복 목사는 현재 할렐루야 교회 원로 목사이며 휏불 트리니티 신대원 대학교 명예 총장으로 목회와 미래 크리스찬 지도자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김 목사는 현재 세계 성시화 운동 대표회장으로 섬기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뉴저지 소재 갈보리 장로교와 인디아나 셰리단 미국인 교회에서 9년간 목회활동 후 볼티모어 벧엘장로교회를 개척, 11년간 재임했다.  
김 목사는 “이번 한미국가조찬기도회의 주제가 ‘주님만 의지합니다(In God we trust)’"라고 소개하며 "이는 내 인생의 모토와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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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서 김상복 목사는 북한에 계셨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 “부모님은 이북에 계신데, 11살때 형과 누나를 따라 엉겁결에 남으로 내려오게 됐다. 그래서 부모없이 고아와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고 말한 김 목사는 "외롭고 힘든 시간들을 하나님께 기도하며 매달렸다. 사람에게는 의지할 수 없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주님만을 믿었더니, 그가 나를 돌보셨다”고 회상했다. 이어서 김 목사는 “6.25 전까지는 북한에 교회가 3000개나 있었다. 그때 교회를 다니며 신앙을 갖게 됐고, 남한에 와서는 중고등학교 때 새벽에 교회에 나가 하나님과 대화하며 북에 있는 가족을 위해서도 늘 기도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미국에서 학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고 설명했다. 이후 김 목사는 1984년에 북에 계신 부모님과 동생의 소식을 듣게 됐다. 그는 고민 끝에 1986년 북한을 찾았다.  
북한에서 만난 어머니와 동생들은 "하나님이 잘 이끌어주셔서" 너무나 잘 지내고 계셨다. 그는 "부모님 가족이 탈북 했고, 예수를 믿는 집안에다가, 아버지가 사업을 하는 자본주의자, 그리고 본래 고향이 부산이셨던 분들이라 숙청 1순위나 다름없었는데, 동생들 4명이 모두 좋은 대학을 나와 평양에서 안정되게 살고 있었다"며 "평생의 기도가 응답받는 순간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눈물도 나지 않고 환한 얼굴로 어머니와 포옹을 했다”는 김 목사의 얼굴은 행복함 그 자체로 피어났다.    
36년만에 만난 어머니는 북한 체제하에서 신앙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혼자서 기도와 찬송을 이어오고 있었다. 김 목사는 "여든이 넘으신 어머니에게 찬송가를 부르자고 했더니 똑똑하게 기억하고 계셨다”며 "교회가 없어도 신앙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산 증인이 어머니"라고 했다.  
끝으로 김 목사는 “인생은 수많은 매듭과 밧줄로 이어져있다. 기도하고 기도하니 모든 매듭들이 풀리는 것을 경험했으며, 구체적으로 기도하고 응답 받을 때 주님과의 신뢰관계가 생기고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주님과 신뢰관계가 생기면 마음속에 영적 라이프가 형성이 된다. 그러면 인생의 모든 매듭이 이해가 간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정원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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