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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아버지, 아들 걱정은 마세요

“칠십일 년 전 칠월 어느 날 논산 훈련소 훈련병 면회실로 가보고 싶다. 그리고 당시 신참 훈련병이던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  갑자기 이런 시간 여행을 꿈꾸게 된 것은 듣고 있던 소설 탓이다.  
 
열 한 시간째 사막을 달리는 중. 혼자서 운전을 하고 있으니 자연스레 묵언 수행 중. 그렇다고 내가 바라는 말의 길이 끊어진 ‘언어도단’의 상황은 아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나에게 시비를 걸고 나는 충직하게 그 분별의 틀에 걸려든다. 내가 어디로 가든 나의 세상은 날 따라온다.  
 
그래서 가끔 소설이 주는 풍선 같은 가상 속의 상상 공간에 내 마음을 풀어 놓는다. 오늘의 소설은 카와구치 도시카즈의 ‘커피가 식을 때까지’.  2020년 출간된 영어 번역판을 오디오로 듣는다. 그리고 서서히 소설 속의 세상으로 빠져들어 간다.  
 
도쿄 뒷골목, 허름한 지하 카페. 좌석은 달랑 9개. 그중 하나가 시간 여행의 비밀 통로. 그 자리에 앉아서 특별 커피를 한 카라프 주문하면 원하는 과거의 시점으로 이동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 소문을 듣고 찾아오지만 그런 시간 여행의 까다로운 조건과 한계를 듣고 실망한다.  
 
첫째 한계는 과거 어느 시점으로 가서 원하는 사람을 만나도 현재 상황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젊은 부부가 하찮은 일로 다투다가 남편이 화가 나서 집을 나간다. 그 남편이 사고로 죽어 버린다. 새댁은 죄책감으로 남은 삶이 망가진다. 그녀는 갈 수 있다면 남편이 집을 뛰쳐나가기 전 그 순간으로 돌아가서 그의 화를 진정시키고 싶을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남편의 마음이 풀어져 집을 나가지 않았더라도, 그때와 지금 사이에 남편이 죽는다는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대부분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는 지금의 현실을 바꾸고 싶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도쿄 카페의 시간 여행은 매력이 크게 떨어진다. 그 카페를 찾은 많은 사람은 여기서 포기한다.  
 
두 번째 한계는 공간적 제약이다. 과거로 여행하는 사람은 과거 그 시점의 그 카페 그 좌석으로 가게 된다. 그 의자에서 일어나는 순간 현재로 강제 송환 당한다. 따라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과거의 어느 때 그 카페에 있었어야 한다. 이 조건 때문에 과거 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대상이 확 줄어 버린다.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 그때 그 카페로 가서 그 사람을 만난다 해도 시간의 제약이 따른다. 한 카라프의 커피가 식을 때까지. 그사이에 할 말 다하고 그 커피를 다 마셔야 현재로 돌아온다.  
 
현실은 그대로 남고, 속 시원히 말할 새도 없고, 아쉬운 이별만 있는 시간 여행을 왜? 답은 첫 번째 조건에 있다. 지금 현재에 있는 사실을 변경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간 여행을 통한 만남과 참회의 대화가 산 자의 인생 흐름을 바꾸어 다른 미래를 만들 수도 있다.  
 
칠 십이 넘은 아들이 이 십 대 초반의 아버지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어머니께서 나의 돌 떡을 싸서 아버지 면회를 갔다 하셨으니, 나는 막 돌을 지난 갓난아기. 장터 같은 면회장에서 딱 십오분. 아버님은 다시 훈련장으로 호출당해서 뛰어가시고. 그게 마지막이었다고. 그는 그 후 반년이 못 가서 이승을 떠나셨다.  
 
늙은 아들이 젊은 아버님께, “아들 걱정 마시라”는 한 마디 전하고 싶다.

김지영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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